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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멘토스쿨의 '멘토' 유승민(30)이 '멘티' 양학선(20)을 번쩍 업었다. "어, 생갭다 가벼운데…." 양학선이 유승민의 등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유승민에게 후배 등에도 한번 업혀보라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선배가 후배를 업어줘야죠. 런던 가서 잘하게…"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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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은 15세에 최연소 탁구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탁구신동'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첫번째 올림픽을 눈물로 기억했다. "2000년 시드니에서 남자복식 4위에 올랐는데 3-4위전에서 지고 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나도 평소엔 강심장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올림픽 무대는 확실히 다르더라. 단식 1회전 탈락 후 패닉이 오더라. 자신감이 넘칠 땐 탁구공이 크게 보이는데 그땐 공이 제발 안넘어왔으면 싶더라"며 웃었다. "올림픽은 느낌 자체가 다르다. 복장검사도 철저하고, 스폰서 노출도 조심해야 하고, 분위기에 압도돼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며 12년 전 첫 경험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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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에서만 15년을 보낸 유승민은 양학선에게 스트레스 관리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운동 하나만 해야 하는 스무살 청춘에게 태릉에서의 삶은 때로 답답하다. 혹독한 훈련 이후에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 역시 경기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불타는 스무살 초반에 연애도 해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한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요령껏 푸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걸 막아버리면 운동도 못한다. 운동 이후에 제일 좋아하는 걸 막아버리면 운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양학선에게 "대신 올림픽 한달 전부터는 모든 연락을 끊고 나한테만 집중했어. 친구들한테도 이해해달라고 했고. 너도 한달 전부터는 마음을 다잡고 올림픽 현장을 떠올리는 훈련을 해. 포디움에서 공중 세바퀴 돌 때 '파파팍' 하고 스포트라이트가 터지는 걸 생각하면 가슴 벅찬 긴장감이 생길 거야"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훈련하다 답답한 일 있으면 우리방에 놀러와. 치킨 시켜줄게." 양학선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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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양학선 "자신감이 떨어질 때 형은 어떻게 극복했어요?"
A.유승민 "너 자신의 기술, 그거 하나만 믿어!"
양학선은 요즘 들어 운동이 잘 안된다고 했다. 유승민은 "선수라면 누구나 희한하게 안풀릴 때가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주변에서 주는 부담감도 클 것"이라고 공감했다. "나는 그럴 땐 오히려 푹 쉰다. 아직 130일이란 시간이 남았으니 강박관념 갖지 말고 네 기술에만 집중하고, 상심하지 말고… 작년 세계선수권 금메달 준비하던 3개월을 한번 복기해봐"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강조했다. "넌 자기 기술에 대한 믿음이 있잖아. 그걸 믿고 절대 흔들리면 안돼. 내가 올림픽 금메달 땄을 때 뭘로 땄는지 알아? 가장 자신있는 기술, 포핸드드라이브 하나였어. 분석해보니 포핸드드라이브 80%로 왕하오를 잡았더라. 너도 '양1(공중에서 3바퀴, 세계 최고난도7.4의 기술)'을 믿고 고집스럽게 하면 반드시 금메달 딴다. 동메달, 은메달은 생각하지 말고, 모 아니면 도로 가야 해. 금메달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여."
1시간여의 멘토링이 이어지는 내내 두 선수의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환했다. 양학선은 '올림픽 베테랑' 유승민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이 조금씩 잡히는 것도 같다. 런던올림픽 1장의 티켓을 놓고 후배들과 마지막 경쟁중인 유승민에게 양학선은 "런던에서 형을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간의 노력들이 충분히 보상받으실 거라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유승민은 "신세대 예비 금메달리스트를 만나 영광이었다. 내 경험담들이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지만 학선이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금메달 멘토링'의 효과일까. '멘토' 유승민이 금세 친해져버린 '멘티' 양학선을 향해 "런던서 금메달 따고 나면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원래 금메달 딴 사람이 사야 하는데 내가 형이니까…" 라며 싱긋 웃었다.
태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