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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총웨이, 짜요!'
예전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남자단식 결승에 나선 이는 말레이시아의 리총웨이(세계 1위)와 중국의 린단(세계 2위).
이번 대회 최고의 빅매치였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린단이 리총웨이를 꺾고 우승을 한 적이 있어서 이들의 리턴매치는 더욱 관심이 컸다.
앞서 열린 남자복식, 여자복식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이 연달아 패해 김이 빠졌지만 3000여 한국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차분하게 빅매치를 관전했다.
한데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석 한 구석에서 '리총웨이 파이팅!'을 외치는 소리가 체육관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 국기를 앞세운 50여명의 말레이시아 교민들이었다. 으레 국제대회에서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국 관중의 응원은 극성스럽기로 소문나 있다.
하지만 이날 중국 관중의 함성은 진작부터 꼬리를 내려야 했다. 간간이 중국 팬들이 '린단 짜요(힘내라)!'를 외치면 이를 되받아 관중석에서 '리총웨이 짜요!'가 울려퍼지기 일쑤였다.
린단을 응원한 이는 거의 없었다. 리총웨이를 위한 압도적인 지지 분위기다. 왜 그랬을까. 중국은 '공공의 적'이 됐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강국인 중국은 국제대회에서 5개 종목을 싹쓸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도 앞서 열린 남녀복식을 휩쓴 상태였다.
은근히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동했다. 이번 대회의 메인 스폰서인 배드민턴 전문 브랜드 '빅터'도 중국의 선전을 원하지 않았다.
대회 총 상금 100만달러(약 12억원) 가운데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5억여원에 이른다. 빅터 코리아 관계자는 "거액을 상금을 중국이 다 챙겨서 돌아가게 하면 사실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게다가 '빅터'는 대만 기업체다. 대만과 중국의 역사적 감정이 좋지 않은 가운데 '빅터'는 중국시장에서 몹시 고생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대표 브랜드 '리닝'과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중국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노골적으로 '빅터'의 중국시장 진출에 훼방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이 더해져 이날 경기장을 찾은 대만 관중들도 리총웨이를 일방적으로 응원했다. 중국 출신의 린단이 패하기를 바란 것이다.
린단은 사실 한국 팬들에게도 찍혔다. 린단은 지난 2008년 대회에서 이현일과의 결승전 도중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흥분하더니 한국 대표팀의 중국인 코치에게 라켓을 집어던지며 추태를 부린 적이 있다. 당시 린단의 매너없는 행동은 한동안 배드민턴계에서 회자가 됐다.
이런 저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끝에 이날 남자단식 준결승에서는 '중국 응원 실종사건'이 연출된 것이다. 결국 후반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던 린단은 1대2로 역전패하며 대회 2연패에 실패했다.
중국의 싹쓸이를 경계하던 한국 배드민턴 관계자들의 표정에도 안도감이 감돌았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