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체조 국가대표' 김윤희의 외롭고 씩씩한 도전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1-12-18 14:21


◇리듬체조 국가대표 김윤희  스포츠조선 DB

지난 겨울 광저우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딴 '요정' 손연재(17·세종고)를 만나러 간 자리에도, 올 여름 발목 부상중인 신수지(20·세종대)를 만나러 간 자리에도 언제나 김윤희(20·세종대)는 그곳에 있었다. 연습을 끝낸 후면 늘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12월 초 태릉선수촌에 김윤희를 만나러 갔다. 신수지도, 손연재도 없었다. 프레올림픽 선발전에 나선 김윤희는 '나홀로' 외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1년 선배' 신수지가 떠난 리듬체조계에서 김윤희는 대학부의 유일한 선수가 됐다. 발목 인대가 늘어난 탓에 약식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고난도 점프는 뛰지 못했지만 조용히 자신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단체전 선수 선발을 위해 태릉선수촌에 모인 중학교 선수들이 선망의 눈으로 국가대표 김윤희를 바라봤다. 김윤희는 "저도 저럴 때가 있었죠"라며 웃었다.

애써 씩씩했다. 2011년은 어쩌면 그녀에게 최고의 해이자 최악의 해였다. 고등학교 시절 단체전 선수로 활약하다, 뒤늦게 개인전 선수로 전향했다. 선배 신수지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올해 김윤희는 KBS배, 회장기, 전국체전 등 국내 대회에서 개인종합 1위를 휩쓸었다. 긴 팔다리, 정확한 난도 구사와 파워풀한 동작으로 인정 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주목받은 건 전국체전 '판정 논란'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본 김윤희, 신수지의 연기 대결은 박빙의 명승부라 더욱 아름다웠다. 국내 마지막 무대, '유종의 미'라는 절실함 때문에 눈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치열했던 무대였다. 채점 결과 발표가 40분 가까이 지연됐고, 전광판과 공식기록지 점수가 일치하지 않았다. 주최측의 명백한 잘못이었다. 하지만 논란 이후 네티즌들의 빗나간 포화는 김윤희의 금메달을 향했다. "나도 내 나름대로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운동한 선수인데, 저를 모르시면서 무조건 매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매일매일 울면서 지냈다"고 털어놨다. 김포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국대회 1~2위를 놓치지 않았던 엘리트 선수다. 12년 넘게 리듬체조 하나만 알고 지낸 선수에게 첫 관심이 악플이라니, 세상은 잔인했다. 날마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선후배 사이만 어색해졌다. "후배인 제가 먼저 수지 언니에게 트위터 글에 대해 사과했어요. 언니도 저도 쿨한 성격이라 진심을 얘기하고 다 풀었죠"라며 웃었다. 8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사이다. 오죽하면 미니홈피 일촌명이 '볼 꺼 다 본 사이'일까. "11월 중순 수지 언니가 태릉선수촌에서 짐을 싸는데 그냥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어요." '요정'들의 우정은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김윤희는 매트 위에 혼자 남았다.

김윤희는 1월16일부터 사흘간 런던 오투아레나에서 열리는 프레올림픽에 출전한다. 출전 엔트리 24명 중 5위 안에 들어야만 런던올림픽에 나설 수 있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동구권 리듬체조 선수들이 총출동한다. 평생 치렀던 그 어떤 대회보다 '좁은 문'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세종고 체육관에서 김지희 국가대표팀 코치, 러시아 코치와 함께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8시간씩 땀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외롭고 높고 쓸쓸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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