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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계의 양신' 양학선(19·한국체대)은 유쾌하다. 솔직하다. 그리고 화끈하다. 열아홉살 소년은 지난해 첫 출전한 로테르담세계선수권 도마 종목에서 4위에 올랐다. 아깝게 메달을 놓친 후 깨달음을 얻었다. "스타트부터 선(先)을 잡고 가야 한다." 절대적인 난도 점수가 필요했다. 남몰래 신기술 계발에 전념했다. 7월 국내 초청경기인 고양 코리아컵 체조대회에서 처음으로 '양1'을 선보였다. 대성공이었다. 프랑스의 최강자 토마 부엘을 누르고 우승했다. 비장의 무기 '양1'은 세계선수권에서도 어김없이 통했다. 16일 도쿄세계체조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6.866점(1차 시기)이라는 전종목 최고점을 받아냈다. 세상에 없던 신기술 '양1', 세상에 없던 난도 점수 7.4점에 체조계가 들떴다. 16일 저녁 만찬장에서 마주친 아드리안 스토이카 국제체조연맹(FIG) 기술위원장은 "엑설런트(Excellent),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이라는 말로 '양'의 신기술을 극찬했다.
"우리 아버지 '농부'라고 말해주세요"
16일 믹스트존에서 외신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신기술 '양1'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양학선의 신공이 유전자에 기인한 거라 생각했을까. "부모님도 체조선수냐"는 질문이 나왔다. 양학선은 거침없었다. 통역을 맡은 김영준 트레이너에게 "우리 아버지 농사 짓는다고, '농부'라고 말해주세요"라고 했다. "His father is farmer(그의 아버지는 농부)"라는 말이 외신을 탔다.
"너는 고1때 국가대표가 된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집을 비운 새 스스로 할 일을 찾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두살 위 형을 따라 우연히 시작한 체조는 '천직'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때 전국소년체전 이단 평행봉 동메달, 6학년 때 링 금메달을 따내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무렵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운동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그 무렵 기도하기 위해 절에 찾았던 부모님이 용한 보살님에게 "고1때 국가대표가 된다"는 말을 듣고 오셨다. '국가대표'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였다. "죽어라 한번 해보자, 안되면 그만 두자고 했다."
"공중 1080도? 뭐가 무서워요?"
도마는 착지가 절대적이다. 체조인들은 '꽂는다'고 표현한다. 공중에서 3바퀴를 돈 후 흔들림없이 매트에 몸을 꽂아내는 것, '여2'에서 반바퀴를 더해 공중에서 3바퀴를 돌아내리는 '양1'은 양학선의 겁없는 도전정신과 끝없는 연습이 만들어낸 결과다. "뭐가 무서워요? 재밌죠. 저는 이해가 안돼요. 그냥 자신있게 뛰면 되지." 남다른 담력과 강심장은 도마 종목과 딱 맞아떨어졌다.
공중에서 1080도는 하나도 안무섭다는 이 소년, 정작 호러 영화는 무서워서 못본단다. 휴식시간이면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라는 애니메이션을 추천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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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선보인 공중에서 2바퀴반 '여2'의 성공률은 95% 이상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뛰면 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양1'의 성공률은 70~80% 정도다. 런던올림픽까지 양1의 성공률을 95~100%까지 끌어올리면 메달권은 확실하다. 난도 7.4의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는 세계에서 양학선이 유일하다. 마지막 착지에서 완벽하게 '꽂는다면' 금메달은 떼논 당상이다.
'백전노장' 조성동 한국대표팀 총감독(65)은 양학선의 금메달 후 20년 전을 떠올렸다. 1991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세계선수권에서 유옥렬이 도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던 해다. "그때 옥렬이가 대학교 1학년, 학선이랑 똑같았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고, 그때도 남자단체는 이번과 똑같이 예선 6위로 올림픽출전권을 땄었다"며 "20년 전과 완전히 똑같다"며 웃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유옥렬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2010년 런던에서 양학선은 기필코 메달색을 바꿔놓을 참이다. 대한민국 체조의 오랜 꿈, 간절한 염원 '금메달'이다.
도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