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제언 1 삼성 거취를 정해라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1-09-05 16:01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삼성그룹이 한국육상을 접수한 지 15년이 됐다. 1997년 삼성그룹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 이건희 회장의 의지로 대한육상경기연맹을 맡았다. 그 이전 집행부는 박정기 국제육상경기연맹 집행이사(당시 한국전력 사장)가 이끌었다.

삼성이 한국육상과 함께 한 15년 동안,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3번의 올림픽과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총 8번의 세계선수권이 있었다. 그동안 한국육상은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육상 인구의 저변이 확대된 것도 아니다. 한때 2만명에 달했던 등록선수는 올해 6542명으로 감소했다. 삼성이 움직이는 체육단체치고 이렇게 성적이 나쁜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그룹이 지향하는 최고 이미지를 깎아먹고 있다.

삼성이 맡은 이후 지금까지 3명의 삼성인이 육상연맹을 지휘했다. 이대원 회장(1997년 1월~2005년 1월), 신필렬 회장(2005년 2월~2009년 1월) 그리고 지금의 오동진 회장(2009년 2월~)이다. 모두 삼성그룹에서 사장 이상을 지낸 성공한 기업인들이다. 하지만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육상은 노 메달에 결선 진출자 단 한 명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 됐다. 제대로 한국육상을 키워 볼 것인지, 아니면 발을 뺄 것인지를 결정할 때가 됐다.

삼성은 한 해에 육상연맹에 20억원(추정) 미만의 돈을 투자한다. 육상연맹의 올 해 예산은 100억원이 조금 안 됐다. 세계육상선수권을 감안해 정부 보조금 등이 들어와 크게 늘어난 예산이다. 예년같으면 50억원이 채 안 된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 1년 예산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과 태극전사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1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삼성이 한국육상을 발전시키려면 지금과 같은 접근으로는 힘들다. 단적으로 지금 처럼 기업에서 실세 자리를 떠난 인사들을 육상연맹으로 보내는 것이 맞지 않다. 그들은 모기업의 눈치를 보게 돼 있다. 의욕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펼치고 싶어도 자금이 달리면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삼성이 대한빙상경기연맹에 김재열 회장(제일모직 사장)을 발령낸 것 처럼 의욕적으로 일할 실세를 보내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지원금을 육상에 투자해야 한다. 한 해 20억원으로는 척박한 한국육상에 기름칠을 할 수가 없다. 남자 400m 기대주 박봉고는 "육상도 축구 처럼 꾸준히 지원하면 걸출한 한두 명의 스타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영의 박태환 처럼 한국육상에도 한두 명의 세계적인 기린아가 나와야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야만 육상을 하겠다는 유망주들도 많아질 것이다. 국민들도 자기 돈을 내고 육상경기 입장권을 사서 관전할 것이다.


삼성이 스스로 거취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일부에선 삼성이 육상을 포기할 경우 누가 하겠느냐고 걱정한다. 육상인들이 직접 연맹을 이끌 힘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6월 금지약물 투여 의혹 허위 제보 사건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결국 무혐의로 사건이 종결됐지만 위기에서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육상인들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스포츠는 곧 국력이다.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다. 그 기본이 10년 이상 바로 서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