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허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밸런스다. 특히 10개의 허들을 넘어야 하는 남자 110m허들은 스피드와 함께 허들링 동작이 중요하다. 공중에서 좌우 균형을 잘 잡아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
류시앙(13초27)이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피니시 라인을 10여m 앞두고 터진 사고에 울었다. 딱 한 번의 허들링에서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 10번째 허들에 오른 다리가 걸렸다. 그래서 생각 보다 왼발 착지점이 짧아졌다. 자칫 미끄러져 트랙에 넘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동작을 느린 그림으로 살펴보면 앞서 달렸던 로블레스가 류시앙의 질주를 방해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방해받은 류시앙이 주춤하는 사이 로블레스(쿠바)는 류시앙보다 앞으로 몸이 튀어나갔다. 그리고 3위를 달리던 리차드슨까지 류시앙을 앞질러 두 번째로 골인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10m허들 결선 레이스는 로블레스와 류시앙의 양강 대결이었다.
출발부터 8번째 허들을 넘을 때까지 로블레스가 레이스를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자이자 현 세계기록(12초87) 보유자인 로블레스는 긴 다리와 탄력에서 류시앙을 앞섰다. 흑인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로블레스는 출발 반응속도에서 0.150초로 류시앙(0.164초)보다 빨랐다. 류시앙은 출발이 늦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로블레스의 뒷꽁무니를 차근차근 따라붙었다.
류시앙의 추격전은 9번째 허들에서 처음 1위로 올라서며 빛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10번째 허들에서 로블레스의 방해 동작에 걸려 역전 드라마는 수포로 돌아갔다.
류시앙은 2008년 안방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에서 결선을 앞두고 오른발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이후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우승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레이스를 통해 류시앙은 여전히 2004년 아테네올림픽 우승할 당시의 경기력에는 근접하지 못했다는게 확인됐다. 로블레스의 방해 동작 이전 허들링에서도 허들을 4개나 넘어트렸다.
류시앙은 동양인의 신체적 약점을 완벽한 허들링 기술로 보완해 세계를 정복했다. 하지만 이번 결선 레이스에선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게 허들링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공중 동작에서 몸의 균형이 흔들리지 않아야 기록이 빨라진다. 좌우상하 밸런스가 무너질 경우 체공 시간이 길어진다. 따라서 허들 선수들은 일부러 높게 타넘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허벅지, 엉덩이에 1.067m 높이의 허들이 닿을듯 말듯 타넘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데 이때 균형이 맞지 않으면 허들을 넘어뜨리게 된다. 허들을 고의로 넘어뜨리지 않으면 실격은 아니다. 하지만 몸이 허들과 부딪힐 경우 그만큼 스피드가 떨어지고 트랙 착지 과정에서도 불안할 수 있다. 그 경우 다음 동작으로 연결하는 것도 매끄럽지 않다.
류시앙의 개인 최고 기록은 12초88이다. 2006년 스위스 로잔에서 세운 기록이다. 무려 5년 전 최고로 잘 나갈 때 세웠다. 이번 대구 결선에서 류시앙의 기록은 13초27. 0.39초 차이다. 류시앙이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해야 할 것 같다. 스피드를 끌어올리고 또 완벽한 허들링 기술로 무장해야 로블레스와 상승세의 리차드슨을 제압할 수 있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