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볼트 훈련파트너 블레이크가 우승할줄이야

국영호 기자

기사입력 2011-08-28 21:50


우사인 볼트(25)가 자신의 훈련 파트너에게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내줄 줄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엄연히 현실이었다.

남자 100m 우승은 볼트의 훈련 파트너인 요한 블레이크(22) 차지였다. 이날 결선에서 9초92로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며 정상에 올랐다.

블레이크가 유망주로 불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궤도에 올라설 줄은 많은 전문가들도 몰랐다. 미국의 육상 전설인 모리스 그린이 경기 전날인 27일 블레이크의 우승을 점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코웃음쳤다. 그린은 "블레이크는 젊고 실력이 좋은 선수다. 트랙에 섰을 때 위협감을 주는 선수가 있기 마련인데, 블레이크는 다른 선수, 특히 볼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한 정신력을 가졌기 때문에 볼트를 이길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린의 말은 거짓말처럼 현실화됐다.

볼트의 바로 옆 자리인 6번 레인에 위치한 블레이크는 볼트의 도발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볼트는 레이스 전 자신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코멘트에 블레이크를 가리키며 손을 가로저었다. '블레이크는 아직 나한테 안돼'라고 비꼰 것이다. 하지만 그린의 말처럼 블레이크는 강심장이었다. 오히려 볼트가 심리적 동요(실격)를 일으키게 할 만큼 말이다.

블레이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볼트의 훈련 파트너로 잘 알려진 유망주였다. 이날 100m 결선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내밀 명함이라고는 '전 세계에서 100m 10초 벽을 가장 빨리 깬 10대 선수' 정도였다. 볼트와 블레이크의 스승인 글렌 밀스 감독은 "블레이크는 언젠가 볼트를 뛰어넘을 재목이다"고 예견했지만 볼트가 버티고 있는 한 그 말이 이뤄질지는 만무해보였다.

하지만 천재성을 가진 블레이크는 스펀지처럼 볼트의 재능을 흡수했다. 볼트를 발굴하고 키운 밀스 감독 아래서 빠르게 볼트의 성장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자메이카대표팀의 막내지만 두둑한 배짱도 가진 것도 원동력이었다.

블레이크는 지난해 중반부터 급성장했다. 함께 훈련하는 볼트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록을 냈다. 뒷바람이 기준을 초과해 공인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블레이크는 지난 5월 9초80을 뛰었다. 개인 최고 기록은 지난해 8월 런던에서 세운 9초89.

이번 대회에서도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올해 시즌 최고 기록으로 9초95를 찍었던 블레이크는 경기 전날 예선 1회전에서 10초12를 기록하며 볼트(10초10)에 이어 전체 2위로 준결선에 올랐다. 이날 오후 열린 준결선에서는 시즌 개인 타이기록인 9초95로 기록을 줄이며 10초05에 그친 볼트를 제치고 1위로 결선에 올랐다.


물론 블레이크가 메이저대회에서 깜짝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 따랐다. 100m 빅3가 모두 레이스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볼트의 실격에 앞서 올시즌 최고 기록 보유자인 아사파 파월(자메이카·9초88)이 경기 이틀을 앞두고 사타구니 부상을 이유로 100m 전격 불참을 선언했다. 9초71의 기록을 가진 타이슨 게이(미국)는 고관술 수술 여파로 아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자신감을 얻은 블레이크는 향후 대회에서 빅3와 견줄만한 세계적인 스프린터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국영호 기자 iam905@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