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변화하는 일본 젊은 세대
기사입력 2000년 04월 04일 14시 25분
"물론이지. 나는 핸드폰은 잃어버릴 때가 많지만 콘돔만은 절대로 잊어먹지 않아. 늘 갖고 다니거든."
`와 졌다'라면서 이케가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야 임마, 그러니까 그 지독한 완벽함이 여자를 질리게 만드는 거야. 때로는 실수든 새로운 변화든 인간미가 필요한 거야. 매사에 세심하고 완벽을 기하는 너처럼 바로 일본인의 성격이 그렇다구. 네 여자가 너의 그런 성격에 도망가듯이.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일본인들의 계산적인 행동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호감을 못 갖는 거라구. 그래서 일본이 세계적으로 고립당하고 있는 거야."
"이케가미씨, 일본 사람 맞아?"
신기해서 내가 한마디했다. 평소 내가 일본인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케가미가 구리하라를 향해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구리하라는 구리하라대로 지지 않고 자신의 완벽주의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실수라든가 즉흥적인 행동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꼭 중년의 샐러리맨의 말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케가미는 구리하라보다 외국생활이 더 길다. 구리하라는 유치원,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보내고 대학교 때 1년 동안 영국에서 언어연수를 했지만, 이케가미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미국에서 지내고 그 후 2년간은 아버지의 사업관계로 브라질에서 공부를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마스터했다.
이케가미의 아버지는 그가 중학생이 되자 `이제부터 네 일은 네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되 그 행동에 대한 책임 또한 네가 전적으로 져야 한다'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고교 때 일본에 돌아와서도 아르바이트로 자기 용돈을 벌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내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뭐해요?"
일본의 토요일은 휴일이다. 은행같은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학교 모두 휴일이다. 우체국만 오전근무를 할 뿐이다. 그런데 이 두 젊은이는 토요일에도 각자의 회사에 나간다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으니 입사 2년차이기 때문에 아직 배울 회사일이 많기 때문이란다. 업무미숙으로 인한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자료실에 가서 국내외 정보화일을 챙겨 보기도 한다는 것.
평일의 퇴근시간은 대략 밤 10시경으로 5년차 이하는 대개 그 시간에 퇴근을 한다고. 하지만 윗사람이 시켜서 일부러 늦게 퇴근하는 것은 아니고 업무를 익히기 위해 그럴 뿐이라는 게 두 사람의 말이었다.
그래서 데이트는 주로 일요일에 한다는 것. 내가 다시 물었다.
"데이트 비용은 서로 더치페이?"
그런데 두 사람의 대답이 달랐다. 구리하라는 `물론'이라고 말했고, 이케가미는 `대부분 내가 낸다'고 말했다. 구리하라의 말로는 자신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여자친구의 월급이 더 많기 때문에 여자쪽에서도 데이트비용을 반씩 부담하는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반면 이케가미는 데이트 비용을 부득이한 경우를 빼고는 모두 자신이 부담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참다못해 구리하라에게 되물었다.
"그럼 애인과 러브호텔에 갈 때도 같이 내요?"
설마 이때만큼은 남자가 모두 내겠지 하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구리하라는 깨끗하게 배반했다. 내 물음에 `물론'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오는 5월에 있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두 사람의 친구까지 불러 새벽 4시 반까지 밤새도록 일본인, 특히 일본남자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전형적인 일본남자 구리하라,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이케가미. 따지고 분석하는 것이 적성에 맞아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호리우치.
이 세명의 젊은이들과 밤새 수다를 떨면서 느낀 결론은 딱 한 가지. 확실히 일본이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에는 이케가미처럼 이야기하는 젊은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는 세계 속의 일본의 위치와 인식까지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사업하는 부모를 둔 호리우치의 생각도 이케가미와 비슷했다. 진짜 일본의 젊은이들이 변해가고 있었다.
역시 일본남자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서울을 향해 어느 출판사 사장에게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일본남자와 하룻밤을 지냈다우!"
[이번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