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특파원수첩] 흔들리는 찬호
기사입력 2000년 03월 31일 13시 50분
박찬호가 시범경기에서 `코리안 특급'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부진을 면치 못해 정규시즌을 앞두고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31일(이하 한국시간)까지 6번의 시범경기에 나선 박찬호는 23이닝 동안 무려 31안타를 얻어맞았다. 22실점중 자책점이 19점으로 방어율이 7.43에 피안타율이 무려 3할3푼이다. 20승에 도전장을 던진 메이저리그팀의 2번 선발치고는 형편없는 기록이다.
스프링 트레이닝의 기록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연습의 과정일뿐이다. 지난 시즌 박찬호는 시범경기에서 방어율 0.78에 피안타율이 1할7푼3리로 거의 `언터처블'이었다. 그러나 정작 정규시즌 뚜껑을 열자 메이저리그 생활중 가장 힘든 1년을 보냈다.
그러나 올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박찬호의 투구는 정규시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걸기가 힘들 정도라 걱정이다. 투구폼도 바꾸고 투수판에서의 위치도 바꾸고 많은 변화를 주었지만 결과는 엉망이다.
31일 몬트리올전을 지켜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박찬호의 투지 실종을 지적했다. 타자들을 압도하겠다는 투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이다. 특히 좌타자들이 나오면 속수무책이다. 이날도 7안타중 5안타를 좌타자들에게 맞았고 홈런을 친 타자도 브라이언 슈나이더라는 무명 포수로 좌타자다.
이날 경기전 만난 다저스 주치의 조브 박사는 박찬호의 오른팔이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해주었다. 팔이 아직 약간 뻣뻣하고 경미한 근육통이 있지만 투구를 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진단이다.
결국 또 `정신적인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투지가 부족하고 자신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다른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지난 시즌 언젠가부터 타자들을 상대로 몸쪽 공략이 눈에 띄게 적어지고 불같은 강속구를 두고도 코너웍 위주로 던지는 버릇이 생긴 박찬호가 한계에 부딪힌 것인가. 대투수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넘어야 할 정신력 극복의 벽이 막아선 느낌이다. 20승 기대보다는 지난 시즌의 부진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베로비치(미 플로리다주)＝민훈기 특파원 hkmin＠earthlink.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