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17)
기사입력 2000년 02월 14일 14시 23분
테헤란로에 위치한 룸살롱 청해는 이대진이 고급 손님만 모시는 곳이어서 1년에 두어번 밖에 가지 않았다. 룸이 15개 밖에 없는 중간 규모의 룸살롱이었지만 첫째로 아가씨들의 수준이 특급이었고 둘째는 룸의 분위기와 서비스가 좋았다.
돈만 들이면 시설은 얼마든지 꾸밀 수가 있는 것이니 결국 룸살롱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인력이다. 그래서 아가씨들을 장악하고 있는 고사장의 주가가 날로 뛰어서 다른 경쟁업체로 부터 수억원대의 프리미엄을 얹힌 스카우트 제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경력등으로 따지고 보면 40대 중반쯤이 분명한데 얼굴은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고연숙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청해의 방 안이다. 이대진의 옆에 앉은 고연숙의 시선이 안동성에게로 옮겨졌다.
"이과장님이 친구분하고 오신다고 해서 나름대로 준비했는데 실수할 지 모르겠네요."
"어디 고사장이 실수한 적 있었소?"
이대진이 느글거리며 웃었다.
"이제 손님 얼굴 보았으니까 실수할 것 같으면 고쳐와야지."
"알았습니다."
안동성에게 웃어보인 고연숙이 방을 나가자 안동성이 긴장이 풀린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형, 저 여자 정말 미인인데."
논현동에서 만나 저녁과 함께 소주를 두병 나눠 마시고 온터라 안동성의 눈가는 붉어져 있었다.
"깨끗하고도 섹시한 상반된 분위기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구만."
"마음에 드십니까?"
"괜찮은데. 명함을 보니까 이집 사장인데. 젊은 나이에 말이요."
"나이가 40대 중반쯤 되었을 겁니다."
"어, 정말이요?"
놀란 안동성이 눈을 크게 떴을 때 문이 열리더니 웨이터들이 술과 안주를 날라왔고 곧 고연숙이 아가씨 둘을 이끌고 들어섰다.
이대진은 안동성의 옆에 앉은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미인이었다. 미인도 수천, 수만 종류의 생김새가 있는 법이며 이에 대한 각자의 취향 또한 다른 법이다.
안동성은 둥근 얼굴에 살이 찐 체격이었고 손이 굵고 뭉퉁했다. 외부에서 보이는 조건은 우선 그것이다. 그런데 안동성의 파트너는 가는 체격에 얼굴의 선도 섬세했으며 손가락이 길었다. 하나같이 대조적이었다.
"마음에 드세요?"
고연숙이 안동성에게 물었는데 자신에 찬 표정이었다. 안동성이 상기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자 고연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부르시고 즐겁게 노세요."
고연숙은 이대진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안녕하셨어요?"
그때서야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이대진에게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이대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너도 잘 있었어?"
반년쯤 전에 바이어하고 때을 적의 파트너였다. 술을 마신다음 같이 2차까지 나갔지만 그후로는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었다. 아가씨들이 일어서서 인사를 할 때서야 파트너의 이름이 정미연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이형, 우리 미래를 위하여 건배합시다."
위스키 잔을 든 안동성이 이대진을 바라보았다.
"투쟁하는 자들의 미래를 위하여."
이대진은 한모금에 위스키를 삼켰다. 소주를 마시면서도 안동성은 밑도 끝도 없이 싸우자고 했다. 투쟁이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다섯번도 더 썼다. 안동성의 빈잔에 술을 채우면서 이대진이 웃었다.
"안형, 내가 도와 드리지요. 나는 안형의 싸움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습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