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 '재미를 찍는 영원한 감독이고 싶다'
기사입력 2000년 01월 20일 14시 12분
`최고'란 말은 언제나 책임을 요구한다. 대중들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계의 최고 파워맨'이라고 불리우는 시네마서비스 대표 강우석.
초등학교 시절 주산과 암산을 잘해 `암산왕'을 차지했던 그다. 10대 시절 `암산왕'이었던 강우석이 40대엔 `영화왕'으로 우뚝섰다. 최고가 됐다.
그는 머리로 남들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손으로 과감하게 베팅하면서도 손가락으로 성공여부를 면밀히 계산하고 눈으로 영화계의 판세를 읽어낸다. 그 밑바닥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힘과 강우석 특유의 내적 에너지가 깔려있다.
그는 1류 영화도박사다. 벌 것을 전제로 사업을 벌이고 번만큼 그대로 재투자한다. `투캅스'로 번돈을 `초록물고기'에, `여고괴담' 수익을 `이재수의 난'에 고스란히 쏟아붓는 식이다. 의리 하나로 제작비를 지원, 사나이의 정도 나눈다. 그것이 바로 `영화에 미친 사나이' 강우석의 힘이다.
그는 거창한 수식어를 단 닉네임보다는 그냥 `강감독'으로 불리길 좋아한다.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사'라는 명성에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가 평상시 입고 있는 바지는 반듯하게 주름이 잡혀 있기 보다 오히려 구겨진 듯한 옷이다. 최고의 옷같지 않다. 그러나 그의 눈은 날카롭다. 사냥감을 고르는 매처럼.
새해들어 강우석은 정신없이 뛰고 있다. 할리우드 직배사인 20세기 폭스 코리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전국 극장 체인화에도 신경을 쏟고 있다. 또 우노필름과 함께 자본금 115억원의 `무한영상 벤처투자조합'이란 국내 최대의 영상투자조합을 결성했다.
그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영화인이다. 손대는 작품은 대부분 성공하기 때문이다. 회사 설립 4년만에 한국영화 시장의 60%를 차지했고 올해엔 70%가 목표다. 지난해엔 30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그는 아침 7시 30분경 사무실에 출근한다. 영화만을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호러, 액션, 코믹, 멜로 등 확실한 장르영화를 추구한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 남고 싶은 강우석. 영화 외의 유일한 즐거움은 3년전 시작, 현재 보기플레이 수준인 골프다.
-한국영화의 흥행1인자, 파워맨 등 닉네임이 많은데…
▲전 재미있는 영화 만드는 사람이죠. 동네 비디오 가게 주인이나 옆집 분들이 왜 감독 안하냐고들 하죠. `강감독 영화 재미있다'는 거에요. 제가 감독한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고 말해주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회사 이름처럼 `재미'로 관객들에게 영화서비를 하고 싶어요.
-최근 한국영화 전체 제작의 70%를 담당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오만방자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영화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얘기죠. 좋아하는 일하면서 돈까지 많이 벌었어요. 관객들이 와 주셨기 때문이죠. 영화인의 사회환원은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돌려 드리는게 아닐까요? 확실한 장르 영화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요.
-지난해 배급력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12편을 제작, 배급했어요. 6편 정도가 성공한 것 같아요. 안된 영화도 있지만 돈 좀 벌었어요. 시네마 서비스와 관계되는 회사가 10개 정도는 되요. 인원으로 500명 정도 되요. 이들과 함께 먹고 살며 영화를 만들수 있어 다행이죠.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은?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 바로 `자귀모'에요. 기획단계 부터 확신을 가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이죠. 욕심이 컸는지 기대에 비해 관객 호응도가 약했어요. 기획의도나 작가의도가 표현되고 영상으로 옮겨지고 관객들과 극장에서 만났을 때 꼭 기대한대로 나타나기는 어렵죠. 작품에 대한 과신이 커서 실망도 컸어요.
-투자기준이나 원칙은?
▲영화는 재미에요. 관객도 제작자도 재미에요. 저는 누가 어떻게 만드냐를 가장 중요시 여겨요. 영화는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해요. 시나리오부터 새로운 것을 고집하죠. 배우 캐스팅과 감독 선정은 다음 문제에요.
-캐스팅의 원칙과 흥행의 함수관계는?
▲`투캅스' 당시 출연했던 안성기 박중훈씨가 완전한 흥행보증수표라고 할순 없어요. 스타가 필요한 영화와 신예들만으로 만들 영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고 괴담'같은 경우는 스타배우가 필요 하지만, 최근 제작중인 `해변으로 가다'는 배우보다 세트 등 다른 부분에 투자가 앞서야 해요. 확실한 장르 영화는 스타 캐스팅 보다 컨셉트가 더 중요하죠.
-`신라의 달밤'으로 만 2년만에 감독 복귀하는 소감은?
▲주위에선 칭찬반, 우려반이에요. 칭찬쪽은 장사꾼이 아닌데 감독으로 잘 돌아왔다는 것이고, 우려쪽은 지금 한국영화 활성화를 위해 할일도 많은데 제작사업이 움츠려들까 걱정된다는 거죠. 그러나 제 입장은 `영원한 감독'이고 싶어요. 저를 배급업자나 투자자로 소개할 땐 섭섭한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신라의 달밤'은 어떤 영화인가?
▲현대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문무의 대결을 그린 영화죠. 고등학교 시절 공부잘하는 학생은 건달에, 건달은 공부잘하는 사람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게 되죠. 이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서로를 보호하려고 했지 다치게 만들지는 않았죠. 문무에서 1등을 달린 자들이 성장하여 다시 그 도시에서 만나 한 여자 면도사를 놓고 벌이는 한판의 전쟁을 다룬 작품입니다.
-성공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성공했다면 그 비결은 `욕심'이죠. 공부로 1등을 해본 적은 없어요. 열등반으로 쫓겨나지 않으려고 노력한 정도지요. 그러나 하고 싶은 일에서는 꼭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죠. 영화는 달라요. 제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영화 만들고 배급하는 거에요. 언제나 잘할 수 있다는 자기최면을 가지고 살아요. 인생을 살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1등을 못하면 스스로를 자학하게 되요. 그러다 보니 남들이 무모하다고 말할 정도로 욕심을 부리죠.
-올 한국영화제작 전망은?
▲질적으로 풍부해질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양적으로는 무척 풍부해질 것으로 봅니다. 우리 영화 만들어서 돈벌 생각은 없어요. 그동안 까먹은 영화도 많아요. 하여튼 저는 올해도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 겁니다. 올 한해 동안 15∼20편 정도 제작할 예정입니다.
-국내 영화사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저희 회사 입장보다는 증권사와 회계법인 쪽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왜 상장을 하지 않느냐고요. 회사를 위해서, 아니 영화시장을 위해서 상장이 반드시 필요하고,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지요. 회사를 더 성장시켜 상장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서울극장의 곽정환 회장과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평생 잊지 못할 영화인은?
▲돈도 없는 놈이 연 300억원 매출을 올리면서 그 액수만큼 영화에 재투자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죠. 짧은 기간 동안 제작편수를 겁없이 확장할 수 있는 일종의 배짱은 다름아닌 서울극장의 곽정환 회장이 도와주기 때문이죠. 30년 동안 쌓은 영화 배급 노하우를 저에게 주신 것은 그 분입니다. 자식에게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늘 감사해요.
-앞으로 계획은?
▲영화 만드는거죠. 앞으로 매년 10편 이상씩을 제작할 겁니다. 어정쩡한 영화보다 작품성 아니면 흥행성 둘 중 하나를 선택 할겁니다. 돈벌고 까먹고는 그리 중요치 않아요.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