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서세원의 세상살이 (3)
기사입력 1999년 03월 10일 16시 10분
초등학교 입학식 날 뒷머리는 까치집을 진 채 앞머리는 딱 붙이고 가슴엔 하얀 가제수건을 달고 조금이라도 더 커보이려고 열심히 까치발을 서던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에 난 또래 친구들 보다 훨씬 덩치가 큰 편이어서 독수리반에 배정되었다.
하지만 삐쭉 키가 크고 눈이 유난히 작았던 난 가만히 있어도 선생님의 관심의 대상 1호였을 텐데 왜 그렇게 수다를 떨며 서 있었는지….
선생님은 뒤에서 떠들고 장난치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가 참새지, 독수리냐?"
그 한마디에 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참새반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참새반에서 예쁜 여자짝꿍을 만나게 되었다.
분홍 스웨터와 분홍 스커트….
눈이 아릴 정도로 예뻤다.
그렇게 핑크빛 세트 옷을 맞춰 입는다는 것은 그 시절엔 매우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난 그 세련된 짝꿍에게 맘을 빼앗겼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지금의 집사람 보다는 훨씬 못했다는 거다.
(서정희 여사가 이부분을 중점적으로 읽어주길 바라며….)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발동되어 짝꿍의 집까지 쫓아가게 되었는데 산넘고 물건너 논둑길과 숲길을 지나 한참을 가는게 아닌가.
드디어 짝꿍이 발을 멈춘 곳은 언뜻보면 할아버지로 보이는 힘없는 아버지와 얼굴에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가 계시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었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나에겐 상당한 충격이었다.
짝꿍은 겉보기완 달리 상당히 가난한 집 딸이었던 것이다.
난 그길로 집으로 돌아오며 하느님을 원망했다.
기껏해야 돌뿌리를 걷어차고 나무가지를 꺾어버리는 정도였지만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왜 하느님은 이 세상에 없는 자와 있는 자를 구분하셔서 이토록 마음 아프게 하는 걸까.
모두가 부자일 순 없을까.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심오한 인생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봄이 시작한다는 중압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봄날, 진달래꽃 같은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밝게 웃던 짝꿍의 모습에서 마냥 행복한 모습을 찾고 싶은 내 마음은 이미 봄을 닮아있었다.
[방송 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