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미녀의 얼굴(3)
기사입력 1999년 01월 29일 15시 31분
"다 끝났대！ 낼 모레부터 바로 밀어버리고 공사 시작할 거래. 오늘이 끝이야！"
실내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통곡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탄식이 일었다. 손에 든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쨍그랑！ 갑자기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불어닥쳤다.
"이젠 다 끝났어！"
울부짖는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이 물건 저 물건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아냐, 괜찮아. 괜찮을 거야."
다른 여자가 울부짖는 여자를 끌어안으며 달랬다.
"다른 데 취직하면 되잖아. 또 다른 일자리가 있을 거야."
그러나 울부짖는 여자의 다음 말이 모두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누가? 어디서? 우리 같은 병신에게 일자리를 주기나 한대?"
충격이었다. 스스로가 병신이라고 표현을 해버린, 그 절망적인 절규.
세영은 넋이 나간 얼굴을 치켜들었다. 바람을 타고 들어온 차가운 빗방울이 그 예쁜 얼굴을 때려댔다.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이곳은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몸을 일으키면서 곁에 있는 목발을 집어들려고 손을 뻗었을 때,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가슴에 뭔가가 안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잠시 내려다 본 뒤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던져버렸다. 땅바닥에 떨어진 인형은 한 번 튕기고 나서 조용히 바닥에 누웠다. 마치 뻣뻣하게 굳어버린 시체처럼.
세영은 잠시 그 인형을 바라보고 있다가 미련 없이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목발을 잡았다. 이제는 다 끝난 일이었다.
-2-
"뭐어?" 심하게 다리를 절며 침대를 향해 다가오던 친구 선예가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러고 있었구나?"
친구는 비에 젖은 머리를 모아 쥔 채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응."세영은 베개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거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제 어떡하냐?"
선예가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낡은 침대는 그 작은 체구에도 삐걱거리는 비명을 질러댔다.
"요즘 일자리 구하는 게 장난이 아닌데…. 더욱이 우리 같은…."
그녀는 거기에서 말을 끊었다. 우리 같은 병신? 우리 같은 불구자? 아니면 우리 같은 장애인? 그 어떤 단어로도 이 현실을 타개할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선예도 흐느끼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어떡하면 좋으니. 나도 겨우 하루 몇 시간 하는 일자리에, 그나마도 간신히 매달려 있을 뿐인데…."
"차라리…." 문득 조용히 흘러나온 세영의 목소리가 친구의 말을 가로막았다.
-3-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씩 멀리서 시퍼런 번갯불이 번쩍거렸지만 천둥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수천 개의 주먹으로 대지를 때려대는 빗방울에 천둥조차 질려버린 것 같았다.
그런 속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는 모습에서 여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그 체구는 아주 작아 보였다. 여자라기보다는 어린애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그런 그림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창 밖에서, 창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낡고 페인트마저 다 벗겨져 나갔지만, 정성 들여 꾸민 창틀이었다. 값싼 천을 사용했지만, 예쁘게 레이스를 만들어 단 커튼이 있었다.
오래 되어 낡기는 했지만, 가장 아늑한 방이었다. 그 방에 난 단 하나의 창문.
그 창문 밖으로 바깥 세계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실내의 평안함과는 달리 정말 험난한 세상이었다.
그 험난한 곳에서, 누군가 방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글 박무정(아이디:MirSin)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