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21)
기사입력 1998년 04월 23일 14시 54분
"나온다！"
시노하라와 곤도가 거의 동시에 낮게 소리쳤고 이준석은 스코프에 바짝 눈을 붙였다.
5볼트 배터리가 들어 있어 눈금이 빛을 냈고 선위로 사람들의 형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들과의 직선거리는 백미터도 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의 얼굴도 구분이 된다.
그들은 서둘러 트럭 위로 오르고 있었는데 부상자도 세명이나 있었다.
"시바다, 준비해라！ 트럭이 떠난다！"
시노하라가 무전기를 들고 숨가쁘게 말했다. 앞에 선 트럭은 이미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준석은 숨을 죽이고 스코프를 노려보았다. 옆쪽의 가또가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저격총에 소음기까지 끼워져 있었으므로 가네다는 총을 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가또는 이준석의 솜씨를 포트사이드에서 보았다. 그가 이 거리에서 맞히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두번째의 트럭에 부상자가 실리더니 마지막으로 한 사내가 뛰어 올랐다.
이준석은 사내의 머리를 눈금위로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을 삼켰다. 푸른 눈금위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은 버트였던 것이다.
그는 아직 두 손으로 트럭의 뒤칸막이를 쥐고 매달려 있었다.
트럭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준석이 총구를 그 방향으로 움직이자 얼굴이 다시 초점 가운데에 잡혔다.
그가 힐끗 이쪽을 보았는데 초점이 콧날 위에 박혔다.
방아쇠에 걸린 이준석의 손가락이 잠깐 굳어졌다가 그는 스코프에서 눈을 떼었다.
가또가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트럭이 오른쪽 길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대위, 쏠 생각이 아니었습니까?"
가또가 묻자 이준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생각이 달아났소."
가또는 이유를 묻지 않고 무전기를 들었다. 가네다에게 보고하려는 것이다.
"하시드파가 몰살을 당했는가는 내일 아침 뉴스를 봐야 알겠군."
시노하라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자, 갑시다. 귀찮게 되기 전에."
그로부터 두 시간쯤 지난 후인 새벽 네시경에 가네다는 시바다의 전화를 받았다.
"보스, 트럭 한대는 올드 카이로에서 섰습니다. 이 곳은 아랍식 주택가요."
시바다는 지친듯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모두 트럭에서 내려 흩어지는 바람에 놓쳤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가네다가 입맛을 다셨다.
나머지 한 대는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이쪽은 따라 들어가지도 못한 것이다.
"미행을 따돌리려는 수작이었어."
뱉듯이 말한 가네다가 머리칼을 움켜 쥐었다. 일이 막힐 때의 그의 버릇인 모양이었다.
"핫산을 다시 다그치는 수밖에 없다. 만일 하시드가 살아 남았다면 제 2의 은신처가 어딘지 알고 있겠지."
"습격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것도 급합니다."
시노하라가 충혈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몇시간 후면 날이 밝을테니 이집트인 정보원을 그쪽에 보내 봅시다."
머리를 끄덕인 가네다가 문득 방안을 둘러 보았다.
"대위는 어디있나?"
이준석의 호칭은 대위인 것이다. 응접실에 모여앉은 사내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아마 쉬러간것 같습니다."
가또가 말하자 가네다는 정색한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대위를 철저히 감시하도록. 절대로 이탈시키면 안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