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기] 이승희의 '나의꿈 나의 삶' (4)
기사입력 1997년 04월 28일 16시 47분
소녀시절, 가출도 했었다. 다른 한국아이와 가출했다. 하루만에 잡혀들어온 가출. 나는 아빠에게 뺨을 맞았다.
반항기였다. 집안상황도 이래저래 안좋았다. 나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어느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앉아 알약을 삼켰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어 손가락을 목에 넣어 약을 다 토해냈다. 가족, 그리고 동생 승재 생각을 하니 죽을 수가 없었다. 열다섯살. 나는 자신을 미운 오리새끼라고 생각했다.
16세가 되면서 에어로빅 강사 등의 일을 했다. 수입은 모두 집안 생활비로 들어갔다.
고교졸업. 성적이 우수해 몇몇 대학에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입학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 믿고 대학에 들어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즈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동생 승재를 데리고 워싱턴DC로 떠나셨다. 나는 댈러스에 혼자 남아 살게 됐다.
오, 자유！ 영화관을 쏘아다녔다. 술을 마셨고 새벽까지 파티도 즐겼다. 낮에 자고 밤에 놀러다녔다. 마음대로 살았다. 8개월 내내 파티만 했다.
그러던중 댈러스에서 꽤 유명한 나이트클럽의 패션쇼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다. 어느날 주인이 내게 "패션쇼를 기획하고 있는데 아시안 모델이 필요하다.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OK！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수락했다. 말하자면 그게 모델로서의 데뷔무대였다. 재밌었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돈도 가족도 없었다. 대학도 못갔고 외로웠다. 나는 나조차 사랑할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칵테일 웨이트리스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에 다니던 동생 승재가 워싱턴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형편이 어려우니 누나가 좀 도와달라는 내용. 승재는 울면서 매달렸다.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몇개월간의 자유생활 끝에 아버지와 동생이 있는 워싱턴으로 갔다.
아빠와 동생은 하숙집에 살고 있었다. 아주 작은 지하실의 방. 그 작은방에는 겨울을 이겨낼 온기가 없었다. 냉장고에는 쌀과 라면, 김치만 있었다. 나는 스무살에 가장이 되어야 했다. 동생 승재의 친구집에서 하는 레스토랑에 웨이트리스로 취직했다. 승재도 밤이면 빌딩청소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