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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JOB스토리 : 수어통역사] 표정이 수어의 절반, 마스크 못써…"소외계층 도와 뿌듯"

장종호 기자

기사입력 2020-04-14 10:42


최근 코로나19와 관련된 영상들이 연이어 방송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정보들을 국민에게 알리느라 분주하다.

이런 브리핑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수어통역사.

이들은 발표자 바로 옆에서 약 36만명의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手語)로 발표내용을 전달하느라 쉴 새가 없다.

이들로부터 수어통역사로서의 뿌듯한 점과 어려운 점, 그리고 수어통역사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지 등을 들어봤다.


◇청각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수어통역사.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수어로 표현한 '코로나19 이겨낼 수 있습니다'의 연속 동작.
어학·상식·체력 등 중요…한번에 30분 이상 수어통역 못해

"박학다식한 투명인간."

경력 23년차인 유정은씨(프리랜서, 대구대장애학생지원센터)는 수어통역사에 대해 이처럼 정의를 내렸다.


유씨는 "다양한 현장과 영역에서 수어통역을 하려면 배경지식이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많은 상식과 지식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통역을 할땐 그 자리에 있으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통역만 할 뿐 내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견이 개입되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수어통역사가 되기 위해선 우선 어학적 재능, 다양한 경험을 통한 배경 지식, 그리고 강인한 체력 등이 필요하다.

수어도 언어이고 음성언어를 듣고 수어로 변환해 통역하려면 타고난 어학적 재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정은씨는 "특히 한국어를 잘 해야 한다. 원래 외국어 통역에서도 모어 실력이 뛰어나야 통역을 잘 할 수 있는데 수어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또한 유씨는 "수어통역을 할 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배경지식이 통역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며 "평소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신문읽기를 통해 배경지식을 쌓아 갈수록 통역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수어통역은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을 동시에 해야 하기에 체력도 중요하다.

유씨는 "통역을 하는 동안 계속 팔을 움직여야 하니 체력이 약해서는 버티지를 못한다"며 "요즘은 공식 행사 통역은 30분씩 교대를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학에서 통역을 할 경우 2~3시간을 혼자서 해야 한다. 결국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의 코로나19 브리핑때에도 한 사람의 통역사가 한 번에 30분 이상 수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일반적인 브리핑의 경우 2명의 통역사가 대기·교대하며 현장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수어통역사가 되려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1년에 한번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르는데 필기시험은 7월 중에, 실기시험은 10월 중에 이뤄진다.

필기시험에 한 번 합격하면 세 번 실기시험 응시가 가능하다. 시험 준비는 주로 각 시·도 농아인협회에서 시험 대비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보통 시험대비반에 들어가려면 수어교육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을 수료해야 한다.

상위 프리랜서는 고수입…표정이 수어의 절반, 마스크 못써

국내 수어통역사는 약 2000명 이하로, 약 36만명의 청각장애인 수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희소성이 있는 직업임에도 열악한 처우로 수어통역사를 직업적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어통역사의 초봉은 2500만원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최근엔 수어통역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수입이 올라간 경우도 종종 있다.

유씨는 "수어실력이 뛰어난 상위 몇 %의 프리랜서들은 연 수입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요즘엔 관련 법 개정과 수요 증가로 수어통역사의 미래전망성은 밝아졌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약칭 한국수어법)이 제정돼 한국수어법이 제정됨에 따라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임이 인정된 것.

이에따라 공공기관, 병원, 기업들의 수어통역사 채용이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수어통역사를 고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씨는 "이번 코로나19로 수어통역사에 대한 관심도도 많이 높아져 앞으로 지금의 열악한 수어통역사 처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앞으로 수어통역사를 필요로 하는 현장들이 많이 늘어 날 것이니 전문직으로서 전망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보면 수어통역사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바이러스 감염의 우려에도 왜 그런 것일까.

이는 얼굴 표정이 수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어는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손 동작과 얼굴 표정 및 몸짓으로 하는 비수지(非手指) 신호로 구성된다.

유씨는 "수어에도 언어의 조사가 존재하는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표정과 몸짓 즉 수어학적 용어로 비수지 신호"라며 "비수지 신호는 대부분 표정으로 나타나고 입모양도 수어를 읽을 때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스크를 착용하면 이런 얼굴표정과 입모양을 볼 수 없게 되는데 그럴 경우 내용의 40~50%도 전달이 되지 못한다"며 "그래서 수어통역사는 정확한 통역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같은 어려움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뿐만아니라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에도 겪은 것"이라고 유씨는 덧붙였다.

공평한 교육환경 만들어지길…후배들에 "프로정신 가져야"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도 수어통역사들은 소외된 이들을 돕는다는 것 자체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유씨는 "청각장애인의 취업시 면접 등을 도울 때도 있고 때로는 병원에서 보호자 역할을 한다거나, 그들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돕는 경우 몸은 힘들더라도 행복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아울러 음성언어를 손과 표정으로 전달하는 것과 박학다식해진다는 점도 직업적 매력이라고 꼽는다.

유씨는 "수어 어휘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내가 창의적으로 그림처럼 만들어내서 통역으로 전달했을 때 농인들이 보고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어주는 순간이 최고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분야를 통역하다보니 지식과 기술이 쌓여간다. 남들은 돈 내고 배워야 할 것들을 돈 벌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어통역사로서의 꿈과 희망사항도 전했다.

유씨는 "감염병으로 인해 학교들이 집합 수업을 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전환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농인들이다"며 "수어통역을 받으면서 수업하기를 원하는 농인들이 자유롭게 언제든 수어통역 지원을 받으며 일반인과 같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만들어 지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학뿐 아니라 초중고까지 수어통역으로 농인들이 일반인과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농인들의 사회진출의 장벽이 좀 더 낮아질 것이고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수어통역사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유정은씨는 "프로정신을 가졌으면 한다. 수어통역사로서 프로정신은 매일 수어통역 실력 향상을 위해 안주하지 말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라며 "한국어 어휘력이 곧 수어통역의 질을 좌우하기에 열심히 책과 신문을 읽어야 한다. 수어는 농인들의 제1언어이므로 늘 겸손한 자세로 수어 배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평소 복장이나 외모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 농인들과 일반인들에게 모두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코로나19로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에서 원격으로 수어통역을 지원하고 있는 유정은씨.

◇유정은씨가 지난해 열렸던 대구대 축제 때 카메라 앞에서 통역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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