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이 아니라 소중한 보물입니다."
고성능차, 스마트차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요즘 한국 자동차의 '유산'인 포니의 매력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동호회로부터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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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를 풍미했던 포니승용차가 지금의 도로에 등장하거나 주차돼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시선이 고정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터.
젊은 세대는 그 디자인의 생소함에, 중장년층은 잠시나마 옛 생각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호회 '포니 타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김상국씨(차량오디오·휴대폰 매장 운영) 역시 차량 소유의 이유를 '추억'이라고 꼽는다.
김 대표가 소유 중인 올드카는 1981년식 포니1 픽업모델.
그는 "어릴적 부친이 포니 택시를 운행한 적이 있는데, 차를 보다보면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7년 전 포니를 중고로 구입하게 된 계기는 사실 가게 홍보 차원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자동차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포니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회원은 "평소 올드카가 갖고 있는 고유의 디자인과 컬러에 매료돼 소유하게 됐다"며 "흔하게 볼 수 없는 차량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된 지 30~40년된 올드카이다 보니 회원들이 차량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부품을 구하기 위해 오래된 카센터나 폐차장 방문은 흔한 일이고, 온라인을 통해 해외에서 역수입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몇천원짜리 부품을 구하기 위해 몇시간 떨어진 곳까지 다녀오기도 한다"며 "정 구하기 힘든 부품은 3D 프린팅을 통해 제작한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회원들은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CF 촬영 등의 섭외 요구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대여비를 받고 촬영용으로 내준 차량이 간혹 파손돼 돌아오기 때문이다.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보니 보상비를 받는다해도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량 실내가 좁아 운전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
김 대표는 "포니픽업의 경우 기어변속을 해야되기 때문에 신장이 175㎝만 되어도 실내가 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서 "성인 2명이 타면 꽉차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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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의 시세는 얼마나 될까.
1970년대 후반 포니1 승용차의 경우 무등록 차량은 4000만~5000만원 수준이고, 번호판이 부착돼 있으면 1억원 이상에 거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폐차 수준인 경우에도 수 백만원에 달한다.
김 대표가 갖고있는 1981년식 포니1 픽업모델은 승용차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지만, 그럼에도 현재 3000만원 가량에 매매될 것으로 추산된다.
해당 연식·모델이 등록돼 운행 중인 차량은 김 대표의 포니가 국내 유일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차량관리에 애정을 쏟다보니 아직은 판매할 생각이 없다"면서 "훗날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운행 성능은 어떨까. 차량관리가 잘되어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회원들의 말이다.
동호회는 최근 무려 800㎞에 달하는 투어를 무리없이 진행해 차량의 성능을 입증했다.
김 대표는 "회원 15명 가량이 지난 11일 경기 용인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경북 경주까지 이틀간 왕복하는 행사를 진행했다"며 "가는 도중 지역 회원들도 합류해 차량에 대한 정보 교류와 회원간 정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회원들의 만족도가 너무 높아 오는 8월에는 부산, 제주 투어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투어 뿐만 아니라 평소 차량을 운행하면 주위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김 대표는 "휴게소나 식당 앞 주차라도 하면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는 예전 포니 소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반가운 말을 건네기도 한다"고 전했다.
포니는 올드카에 대한 '배려'를 받거나 본의 아닌 '사고 유발'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에대해 김 대표는 "차량 합류지점이나 추월시 다른 차량들이 신기해서인지 속도를 줄이고 양보를 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옆 차선에서 달리던 운전자가 차량을 보기위해 시선을 돌리다 앞차를 추돌한 적도 있다"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회원들은 포니 뿐만 아니라 올드카에 대한 제조사의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희망한다.
김 대표는 "30~40년이 된 차량이 현재도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차량의 내구성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어찌보면 동호회는 이를 반영하는 움직이는 광고물인 셈인데, 제조사의 부품조달 및 대책은 아직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포니의 경우 제조사인 현대차가 공장견학, 박물관 투어 등 동호회 행사 지원 등을 통해 회사를 홍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 "남북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동호회원들과 포니를 끌고 남북 대장정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포니차는?
포니차는 1975년 말부터 1990년 초까지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후륜구동 소형차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전 국내에서는 코티나, 마크, 크라운, 퍼블리카 등의 차량을 생산하기는 했지만, 이들 모델은 미국·일본 차를 들여와 단순히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차명인 포니는 작지만 강한 조랑말을 뜻하는 영어 단어 'pony'에서 유래했으며, 이탈리아인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다.
첫 생산된 포니는 5도어 해치백 스타일로 미쓰비시 새턴 엔진이 장착된 후륜구동 모델이다. 배기량은 1238cc, 출력은 80마력이고 4단 수동변속장치가 탑재됐다.
포니 승용차의 전장은 3970㎜로 현재 판매중인 기아의 경차 모닝(3595㎜)보다 약 37㎝ 더 길다. 하지만 포니의 전폭(1558㎜)은 모닝(1595㎜)보다 약 3.7㎝ 더 좁다.
당시 판매가격은 228만원 정도였는데, 이는 서울 시내 주택가격과 비슷한 수준이고 잠실주공아파트 13평형(당시 450만원) 시세의 절반이었다.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1976년 포니 판매량은 1만여 대로, 같은 해 국내 자동차 판매량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포니는 초기에 승용차로 생산되다가 점차 스테이션 왜건과 픽업트럭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확대됐으며, 같은 해 7월부터 남미와 중동 등 외국에도 수출됐다.
이후 1982년 포니2로 대규모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가 1990년 단종되면서 포니의 15년 역사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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