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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면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을 끌고다닌 엄마에게 한 아들이 말했단다.
"엄마 제발 관자 들어가는 곳 좀 그만 가요." 70-80년대의 방학, 특히 겨울방학은 따뜻한 이불안에서 뒹굴다 성탄절 카드만들고 친구들과 놀러다니고 개학 직전 밀린 일기를 쓰는게 다였다. 그와중에도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은 성문영문법과 정석수학으로 선행을 나갔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별 스트레스없이 잘먹고 잘자니 키가 한자나 커서 교복이 껑충 올라가는 풍경이 흔했다. 도시락을 싸지않는 아침은 엄마들의 잔소리까지 줄게했다. 방좀 치워라가 제일 큰 잔소리였을까?
요즘의 방학이 어디 방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이들은 학교다닐때보다 더 바쁘다. 집에 있을 시간도 없다. 대형학원 D의 경우를 보자. 종합반, 아침 9시에 등교해서 오후 6시에 끝난다, 점심도 학원에서 해결한다. 따뜻한 국물과 밥이 똑같은 도시락통에 담겨져 배달되어온다. 학원이 있는 빌딩1층에 위치한 편의점에서는 오뎅과 삼각김밥, 1회용 인스턴트음식이 잘 팔리는 시즌이다. 중고등부얘기가 아니다. 초등부도 그렇다. 재미없는 학원얘기는 뒤로하고 캠프를 보자.
버터발린 발음까지는 안되어도 언어는 무조건 원어민에게란 생각에 또 초등학교 4-5년때가 아니면 보낼 시간이 없다란 말에 필리핀 8주해외캠프를 알아본 경험이 있다. 비용은 외국에서 1대 1 원어민에, 수학 문제집까지 풀어주기에 적지않은 금액,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손서래를 쳤다.
" 나, 거기 왜가?"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을 떠올렸는지 표정이 착잡해진다. 필리핀이 어디있는지, 왜 영어를 배워야하는지 모르는 아이에게 저한테는 황금시간인 방학때 학교처럼 하루종일 외국인과 1대 1로 붙어서 공부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는지 필리핀 다녀왔다는 친구들의 이름을 다 대면서 절대 안가, 싫어를 외쳤었다.
"엄마, 00가 필리핀 갔다왔는데 영어 나보다 못해. 00도 갔다왔는데 걔 영어 00점 맞았어" 결국 필리핀 영어캠프는 물건너갔고 그 돈을 묵히고 모아서 지난 해 호주를 잠깐 다녀왔는데 왜 영어공부를 해야하는지 알겠다며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정의 캠프나 아침부터 주욱 시작되는 학원도 보내면서 여러번의 방학이 지났지만 아이가 제일 기억나는 건 지난 여름 친구들끼리 서울에 있는 야외캠핑장에 가서 1박 2일을 즐겼던 거란다. 남자들이니 가능했겠지만 저들끼리 밥해먹고 아침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물건도 잘 챙겨왔는데 그 " 자기주도적 놀이"는 아이와 엄마인 내게 불만을 가질게 없었다. 그래서 공부도 자기주도자기주도를 외치나보다.
캠프든 뭐든 방학을 보내는 기본적인 원칙은 아이에 대한 배려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평소 체육인으로 키우면 어떻겠냐란 권유를 받았던 초등학생 A군, 더 늦기전에 영어캠프를 시도했다. 가장 생각나는 건 영어공부가 아니라 수업 후 선생님들과 축구하던 거 탁구하던 거 온통 운동하는 것만 기억에 남는단다. 만약 영어캠프가 아닌 운동과 관련한 과정을 했더라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실력은 또 어떻고….
그 반대로 운동에 소질없는 초등학생 B양은 체육과 함께하는 영어캠프를 보냈다. 결과는 영어도 안되고 운동은 더 싫어하게 되었다.
남앞에서 주저주저하는 초등학생C를 인성캠프를 보냈더니 "한사람도 모르는 대형버스에 올려태우고 차창밖에서 웃으면서 손흔드는 엄마가 마귀처럼 보였다 " 라는 말을 했단다. 어른들도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기가 쉽지않은데 하물며 아이는, 자기 의사가 전혀 고려되지않은 낯선 환경이 적잖이 괴로웠을것이다.
사실 제목만 듣고는 그 목표가 실현될 것 같지만 제목만 그럴싸하지 실제 내용은 형편없는 것도 많다.
집에서 과자만들기가 취미인 중학생 H는 이번 겨울 방학때 학교 선행을 잠깐 쉬기로하고 제과제빵사에 도전한다. 적성이 그 길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너무나 하고싶다는데 말릴 수가 없단다. 학기중에는 봉사할 시간이 없는 중학생 M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중증장애인시설에 부모님과 같이 봉사를 신청했다. 시간채우기용의 봉사가 아닌 진짜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인데다 가족이 함께 하니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꼭 체험과 경험이 필요하다면 기존 체험자의 후기를 꼭 읽어보고 시도해도 절대 늦지않다.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대충 알아볼 수는 없지않은가? 자치구별의 방학행사도 의외로 알짜배기가 많다.
어떻게든 놀겠다고 작정하는 아이들과 어떻게든 어디든 보내겠다는 엄마들의 한판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싸울 가치나 있나?.
비용이 좀 부담스럽지만 친구와 혹은 형제가 같이 한동안 집으로부터 떨어져서 그것도 안전한 곳에서 생활하고 배우면서 자립심까지 키워지다면 부모로써는 얼마든지 후원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않고 " 너, 이번 방학때 어디가서 뭐를 배워 " 만큼은 후원받고싶지않을게다. 이번 방학에는 동상이몽을 꾸지않았으면, 우리가 어렸을 때 가졌던 즐거운 방학의 추억을 아이들도 한번 갖게 해보자. 방학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도저히 할 수없는, 지치고 피곤하여 재충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 주어지는 귀한 시간이지 엄마를 위해 생긴 시간이 절대 아니다. 지금 쓸 돈을 묵어놓았다가 정말 정신없이 돈이 들어갈 때 그 때 투자해야한다란 선배들의 조언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잠깐 학원을 내려놓거나 바꾼들 A반에서 C반까지 떨어지겠는가?
SC페이퍼진 1기 주부명예기자 최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