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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지난 1일 FC서울과 대구FC의 '하나원큐 K리그1 2022' 34라운드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서울 홈 서포터와 서울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 사이에 때아닌 마찰이 발생했다.
팬들은 기성용을 앞에 두고 "안익수"를 외치며 당장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당사자가 선수가 아닌 안 감독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분위기를 접한 안 감독이 다시 경기장으로 나와 홈 서포터 앞으로 향했다. 최근 부진에 대해 사과했다. '선수들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응원 부탁드린다'는 말까지 더했다. 확성기가 아닌 마이크를 들고 말해 경기장 곳곳에 안 감독의 말이 전해졌다. 경기장에 있던 팬들 사이에서 박수와 응원의 목소리가 나왔다. 홈팬과 선수의 충돌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볼 법한 사태지만, 안 감독이 마이크를 든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을 떨쳐낼 수 없다. 서울의 전임 사령탑인 최용수 현 강원 감독은 2012년 6월 FA컵에서 수원에 패한 뒤 1시간40분 동안 팀 버스에 갇혔던 기억이 있다. 최 감독은 지금도 그때의 악몽같은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진섭 현 부산 감독은 부진이 계속되던 지난해 9월 서울 팀 버스가 이동하는 통행로 부근에 모인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최용수~박진섭~안익수 감독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선수단의 동기부여를 자극하는 걸개 메시지가 유행하는 것처럼 '감독 불러 세우기'도 최근 K리그의 트렌드가 된 것 같다고 K리그 관계자들은 말했다. 현장에선 팬들의 '감독 콜'을 접했을 때 '감독이 팬들 앞에 나가도 문제, 안 나가도 문제'라고 말한다. 안 나가는 경우는 팬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고, 나갔다간 모멸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팬들 앞에 서본 감독들은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욕설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감독을 불러와 만나야 하는 팬들의 심경은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팀 중 전북을 제외하면 하위 스플릿에 머물고 있다. 최하위 성남의 경우 지난 3일 수원전 패배로 다이렉트 강등이 거의 유력해졌다. 대구도 2연승을 거두기 전엔 강등권에 머물렀다. 구단의 대표 얼굴이자 선수단 책임자를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터다. 수차례 면담 요청에 불응하는 경우 목소리는 더 높아진다.
그럼에도 이러한 '감독 불러 세우기', '버스막기'가 팬들의 집단 행동이 돼선 곤란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감독은 구단의 대표 얼굴이다. 즉석 면담을 하는 그 순간에는 팬들의 답답함이 해소될지 모르지만, 이 장면을 지켜보는 이들에겐 특정팀의 문제가 더욱 부각돼보일 뿐이다. 감독을 불러 세운다고 선수단의 의지가 고취되진 않는다.
감독과 마주한다 한들 나올 수 있는 얘기도 뻔하다. 팬들은 전술 문제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토론 주제로 삼고 싶을 테지만, 과거 사례로 보면 감독은 "죄송하다.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노사협정처럼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감독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다.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는 그 댓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감독과 팬의 즉석 면담이 직장상사의 결정을 앞당기는데 영향을 끼칠 순 있겠지만, 부진 탈출의 해결책이라곤 보기 어렵다.
팬들이 감독을 부르지 않고도 구단에 항의 표시를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플래카드가 대표적이다. 큼지막한 횡단막은 수백, 수천명의 외침보다 강력하다. 구단 입장에선 그 메시지가 언론 등을 통해 노출된 상황에선 팬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의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은 2012년~2013년 부임 기간 내내 'RAFA OUT'이라는 걸개와 마주했고, 시즌을 마친 뒤 팀을 떠났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