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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샛별이 23년 동안 역사를 썼다. K리그의 전설이 된 이동국(41·전북 현대)이 선수 인생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K리그 최고령 선수 이동국이 은퇴를 결정했다. 이동국은 지난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 결정을 팬들에게 알렸다. 이동국은 '올 시즌을 끝으로 내 인생의 모든 걸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다. 푸른 잔디 경기장을 나섰던 기억, 유니폼을 입고 뜨겁게 제 이름을 불러주셨던 팬들의 환호, 그리고 팬들과 함께했던 모든 기쁨과 영광의 순간들을 이제는 추억으로 간직하며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 다가오는 홈 경기가 등 번호 20번을 입고 팬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고 썼다.
화려하게 출발한 이동국의 축구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소속팀 포항과 청소년, 올림픽, 국가대표팀을 오가는 강행군은 그의 무릎을 병들게 했다. 2001년 독일 재활 중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 임대됐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7경기 출전 후 포항으로 복귀해야 했다.
더 큰 시련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전 국민이 히딩크와 태극전사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을 때 이동국은 홀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이동국은 참가하지 못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황태자로 불리며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이동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지만 월드컵 직전 소속팀 포항의 K리그 경기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또 한 번의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2007년 부상에서 회복된 이동국은 다시 해외진출을 시도했다. 이번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정식 입단했다. 하지만 적응에 실패해 1년만에 방출됐다. 2008년 성남으로 복귀한 후에도 이동국의 기량은 회복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이가 최강희 감독이었다.
최강희 감독과의 만남은 이동국에게 제2의 축구인생을 열어줬다. 이동국이 이적한 2009년 전북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동국은 득점왕과 MVP를 거머쥐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작아지던 '라이언 킹'의 포효가 다시 전주성을 들썩이게 했다.
전북에서의 12년 동안 이동국은 모든 영광을 함께 했다. 전북 소속으로 360경기에 출전해 164골-48도움을 기록하며 7번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통산 75경기 출전-37골을 기록하며 이 대회 개인 최다 골 기록을 세웠다. 2016년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치명적인 무릎부상과 국가대표에서의 불운을 이겨낸 이동국은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K리그 통산 '547경기 출전 228골 77도움'은 쉽게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누구보다 긴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이동국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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