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 "네. 우리가 '죽음의 조'인 것을 인정합니다. 제가 메이저대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정 감독의 프로 커리어는 길지 않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이랜드 푸마에서 뛴 기록만 남아있다.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만 29세의 얘기다. 부상 때문에 국가대표 경력도 없다. 그동안 U-20 대표팀을 거쳐간 사령탑과 결이 사뭇 다른 이유다.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것은 생갭다 큰 힘을 발휘한다. 정 감독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꾸준히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무엇보다 이 연령대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정 감독이 "후회 없이"를 외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연령별 대표팀은 2년 간격으로 국제대회가 있어요. 선수들이 그 사이에 훌쩍 성장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그동안 연령별 대표팀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에이스로 성장한 선수도 봤지만, 아픈 손가락도 있어요. 저도 그렇지만, 선수들도 메이저대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아요. 두 번 다시없을 지도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 감독의 말 속에는 이번 대표팀 선수들 뿐만 아니라 연령별 전체 세대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었다. "한 세대가 흔들리면, 그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시아예선에서 아쉬움을 남기면, 월드컵에도 나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든요. 그 연령대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며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거예요."
|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정 감독이다. 이강인(18·발렌시아) 등 해외파 차출에서 난항을 겪었다. '죽음의 조'라는 심리적 압박감, 이번 대표팀을 바라보는 외부시선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족과의 약속도 지켜야 했다. 이전까지 시원시원하게 말을 이어가던 정 감독은 가족 얘기가 나오니 다소 쑥스러운 듯했다. 엉거주춤 입을 뗐다.
"사실 연령별 대표팀은 언론에 노출될 일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회가 다가오니 아무래도 관심을 받게 되잖아요. 어느날 아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대회 가서 꼭 잘 하고 오라고요. 비판 댓글은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도 폴란드 다녀와서 놀아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무슨 말인지 잘 아는 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제게 '아빠 축구하러 안가냐'고 묻더라고요. 가족들이 저를 대표팀에 보내줬어요. 그 약속 지키고 와야죠."
그랬다. 정 감독은 이 모든 것이 사령탑의 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인터뷰 내내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선수들의 성장입니다. 부디 우리 선수들이 빛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 이유다.
이를 악물고 준비한 월드컵. 일단 첫 번째 고비는 넘겼다. 정정용호는 '죽음의 조'에서 2승1패를 기록하며 당당히 16강에 진출했다. 그동안 한국 축구를 괴롭혔던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는 토너먼트다. 지면 끝, 내일은 없는 경기다.
정 감독은 덤덤했다. "선수들에게도 '16강, 8강, 4강 가자'보다는 '청소년으로서 마지막 대회인데 이런 대회에서 한 경기라도 더 하는 게 값진 경험이 될거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그 과정이 경험이 돼 한국에 돌아가면 한 단계 성장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 감독은 일찌감치 토너먼트를 예상했다. "제가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일찍 접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에서 뛰면서 컵 대회 우승을 꽤 많이 해봤어요. 선수시절을 돌아보면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반드시 고비가 있어요.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승리 DNA는 우리 선수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좋은 팀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해서 후회 없도록 뛰겠습니다." 정 감독의 뚝심은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사주로 알아보는 내 운명의 상대
눈으로 보는 동영상 뉴스 핫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