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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 경남의 성공, 기적 아닌 기본에 있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11-27 05:20




"이런 날이 오네요."

경남 구단의 관계자는 감격해했다. 눈물을 흘리는 프런트도 있었다. 황무지에서 피워낸 꽃이기에 더욱 값진 결과였다.

2018년 K리그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경남이다. 경남은 25일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2대1로 승리했다. 남은 한 경기에 상관없이 2위를 확정지었다. 내로라 하는 기업구단을 제치고 차지한 준우승이었다. 단일리그 체제에서 시도민구단이 거둔 최고 성적이기도 하다. 경남은 다음 시즌 K리그를 대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를 누빈다. 성남이 시도민구단으로 ACL 무대를 간 적이 있지만, 당시는 FA컵 우승팀 자격이었다. FA컵은 토너먼트다. 5번만 이기면 된다. 38라운드가 이어지는 '장기레이스' 정규리그를 통해 당당히 ACL에 나서는 시민구단은 경남이 최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2014년 챌린지 강등 후 경남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전임 대표들의 방만한 운영으로 팀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팬들의 관심도 차갑게 식었다. 구단 해체 이야기까지 나왔다. 죽지 못해 사는 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희망이 없던 팀, 경남이 다시 일어섰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예산은 여전히 한정돼 있었고, 팀을 흔드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승격은 했지만, 만만치 않은 K리그1을 뚫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적만으로 경남의 성공은 설명할 수 없다. 답은 '기본'이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경남의 성공 열쇠는 상식과 전문성이었다.

경남 부활의 첫 단추는 구단 운영의 정상화였다. 상식 이하의 운영 속에 곯아버린 경남은 비합리와 부조리가 판을 쳤다. 2016년 조기호 대표가 부임하며 기류가 바뀌었다. 경남 진주 부시장, 창원 제1부시장 출신의 조 대표는 축구는 잘 몰랐지만 운영과 행정은 전문가였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외부 목소리 차단이었다. 조 대표는 여기저기 쏟아지는 선수 청탁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비리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직접 나서 사전에 차단했다.

사실 올 시즌에도 외풍이 있었다. 김종부 감독의 재계약을 둘러싸고 정치적 목소리가 들끓었다. 창원 출신 축구인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무성했다. 승격을 시킨 사령탑으로선 자존심 상할 법한 상황. 이런 외풍을 온 몸으로 막아낸 이가 바로 조 대표였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김 감독을 지켜낸 조 대표는 표적감사로 사표를 내기도 했다.

6월 지방선거 후 경남도는 다시 한번 요동쳤다. 권력이 바뀌었다. 전임 도지사가 임명한 조 대표는 '새로운 도지사에게 부담이 될 수 없다'며 다시 한번 사표를 냈다. 과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남은 조 대표와 김 감독, 두 주역을 지켜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한 결과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이었지만, 사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시도민구단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외풍에서 자유로워진 경남은 내부 강화에 집중했다. 전문성을 보장했다. 선수 영입은 오롯이 프런트의 몫이었다. 예산이 넉넉치 못한 경남은 가성비에 집중했다. 흙속의 진주 혹은 베테랑들을 주목했다. 이름값 보다는 기량과 잠재력만을 따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절함'이었다. 팀을 위해 헌신하고,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선수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누볐다. 성공사례는 열거가 어려울 정도다. 한 명도 성공하기 어려운 외국인 선수 4명을 모두 성공시켰다.

후반기가 백미였다. K리그2에서 뛰던 유지훈과 이광진을 영입해 측면을 강화했다. 위기를 넘긴 원동력이었다. 조 대표는 프런트의 안목을 믿었다. 빠른 결단으로 힘을 실어줬다. 돈도 아꼈다.

프런트가 영입한 원석 같은 선수들을 정교하게 세공하는 것은 김 감독의 몫이었다. 김 감독도 구단에서 데려온 선수들을 믿었다. 선수의 장점을 먼저 파악하고, 쓰임새를 찾았다. 이광진의 오른쪽 풀백 변신도 김 감독의 작품이었다.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한 선수들은 잠재력을 터뜨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줬다. 말수가 적은 김 감독은 늘 핵심을 관통하는 조언으로 선수들을 깨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뛰어난 프런트와 아무리 좋은 선수란 재료가 있어도 결국 요리는 감독의 몫이다. 경남은 김 감독이 멋진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오직 뒷바라지에만 집중했다. 대신 소금을 치거나, '맛이 있다 없다'고 평가하지도 않았다. 전문 요리사 김 감독은 풍성하고 맛있는 상차림으로 믿음에 보답했다.

모두가 K리그의 위기라고 한다. 특히 시도민구단은 더 그렇다. 해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경남은 어렵지만, 그 평범한 진리를 차근차근 실천하며 모범을 보였다. 준우승은 평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원칙을 지켜낸 결과다. 경남의 성공은 기적이 아닌 기본에 있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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