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일드(Wild)는 좋지만 더티(Dirty)는 없어야 한다."
포항 최순호 감독(56)이 4일 수원과의 K리그1 35라운드를 마친 뒤 경기 소감 마지막에 던진 말이다.
최 감독은 현재 K리그1에서 최강희 전북 감독(59) 다음으로 '어르신'에 속하는 베테랑이다. 포항은 지난 2016년 10월, 12년 만에 포항 감독으로 복귀했던 최 감독과 재계약을 5일 발표했다. 그런 최 감독이 일침을 가한 것은 이날 수원 선수들의 플레이 때문이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원 선수들은 1-1 동점 이후 연속 실점을 하는 과정에서 다소 거친 플레이를 남발했다. 이로 인해 감정이 격화돼 양팀 선수들 간 험악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수원이 '매너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 포항전 뿐 아니다.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양상이다. 전북과의 34라운드(10월 28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고, 지난달 31일 울산과의 FA컵 준결승에서도 수원 곽광선과 울산 김태환이 몸싸움 과정에서 신경전을 펼치는 등 시비가 잦았다. 지난달 24일 가시마 앤틀러스(일본)과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준결승 2차전까지 포함하면 수원은 4경기 연속 불미스런 장면을 보였다.
스플릿 라운드로 접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수원은 '클린팀'에 속했다. 올시즌 33라운드 현재 경고(퇴장 포함) 횟수 순위를 살펴보면 수원은 47개로 울산(42개), 포항(43개), 상주(46개) 다음으로 적은 팀이었다. 그런 수원이 상위 스플릿 2경기를 치르는 동안 모두 7개의 경고를 받으며 '더티'란 소리까지 듣게 됐다.
선수 출신 한 관계자는 "사실 선수들끼리 다 안다. '이건 아니잖아'싶은 파울인지, 아닌지….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짐짓 신경전을 벌이지만 납득할 수준을 넘어선 플레이에는 서로 감정이 격해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수원 서정원 감독이 포항전을 앞두고 한 말에서 그 원인을 엿볼 수 있다. 서 감독은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다"면서 "선수들과 면담을 하면 경기 후반부로 접어들 때마다 더 뛰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그게 너무 화가 난다고 하더라"고 걱정했다.
그 '화'가 과격한 플레이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수원 선수들의 '화'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수원은 최근 ACL 준결승과 FA컵, K리그 일정이 겹친 가운데 사흘 간격의 강행군을 펼쳤다. ACL 플레이오프에 참가하느라 1월부터 20경기 가량 더 소화했으니 정상적인 스쿼드라도 체력이 바닥을 드러낼 판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김은선 구자룡 박종우 양상민 홍 철, 사리치 등의 줄부상 이탈로 체력 안배를 위한 로테이션도 하지 못했다.
의학적으로 짜증이 나는 이유는 두뇌에 공급되는 영양소와 호르몬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체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저하되면 활동이 힘들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짜증을 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발생하는 짜증은 또 만성피로를 유발한다고 하니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그렇다고 수원이 현재 처한 열악한 상황이 과격 플레이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동업자 정신'까지 잃은 모습으로 비쳐지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서 감독은 "오랜만에 1주일의 휴식기간이 왔다. 선수들이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팬들은 피로와 함께 수원 선수들의 '화'도 풀리길 기대하고 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