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월드컵 개막 전 북미 프로축구리그(MLS)에서 '세계적인 골잡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조롱거리가 됐다. 몬트리올 임팩트와의 원정경기에서 뒷걸음치던 선수에게 살짝 발을 밟히자 갑자기 상대선수의 뺨을 때렸고 뺨 맞은 선수가 쓰러지자 자기도 아픈 척 덩달아 드러누운 것이다. 비디오 판독 결과 시뮬레이션으로 판명 났고 곧바로 퇴장. 당시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브라히모비치의 과장된 행동을 '시뮬레이션'이라 쓰지 않고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22일 밤 러시아월드컵 조별예선 브라질-코스타리카전(2대0승)에선 네이마르의 할리우드액션이 화제다. 후반 32분 네이마르가 페널티박스안에서 곤잘레스의 반칙으로 넘어지는 연기를 했다.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지만, 잠시 후 VAR(VAR·Video Assistant Referee)을 통해 판정이 번복됐다. 골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별다른 접촉 없이 크게 넘어지는 연기를 러시아 월드컵 첫 도입된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딱 잡아냈다. 네이마르가 체면을 구겼다. PK 판정을 내리는 데 주로 쓰여온 VAR이 처음으로 PK 선언 번복에 활용됐다.
|
이는 지난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김동성과 맞붙었던 미국선수 안톤 오노의 과장된 몸짓 이후다. 당시 김동성의 실격을 부른 오노의 과장된 행동이 마치 미국에서 만든 '람보', '터미네이터', '미션임파서블', '아이언맨' 등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연기처럼 자연스러워서 붙여진 말이다.
|
스포츠의 생명은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십에 달려있다.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십이 무너지면 스포츠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포츠는 공정하고 깨끗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얼마 전 국가대항 테니스 대회에서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득점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서브 성공했으니 비디오 판독 신청하세요'라고 권유하며 양심을 지킨 선수의 이야기는 스포츠맨십의 진수를 보여준 가슴 찡한 장면이다.
승리보다 양심을 지킨 선수와 달리 반칙도 하지 않은 상대선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할리우드 액션은 스포츠의 수많은 반칙 중 가장 악의적이고 비윤리적 행위다. 상대를 모함해 부당 이득을 챙기려는 선수에게는 경고나 퇴장 정도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이번 러시아월드컵 중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하면 심판은 '경기 몰수'라는 강력한 제재를 내리기로 했다고 한다. 할리우드 액션은 경기 몰수까지 가능한 인종차별 사건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할리우드 액션 역시 고의로 시도하다 적발되면 선수 개인의 책임을 넘어 팀 전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는 상대가 곤경에 처하든 말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의식과,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 스포츠 가치의 훼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세계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아주 고약한 반사회적 반칙이다. 사회운동가인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새겨듣는 법이 없지만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데는 선수다'라고 했다.
우리 속담에 '아이들 앞에서 냉수도 함부로 마시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등골이 오싹하다. 할리우드 액션이 정당화되는 사회는 슬프고 희망이 없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아무리 승리가 절박해도 할리우드 액션만큼은 범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한다. "태극전사들아!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16강 가즈아!"
송강영 동서대 레저스포츠학과 교수(전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