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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 길이 멀죠."
입사 6개월. 그렇다. 말 그대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단순히 '6개월'이란 단어에 속아선 안 된다. 내공이 보통 아니다. 차근차근 쌓은 경력이 화려하다. 특이한 이력의 시작점은 단연 축구. 오직 축구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신입 사두진 대리(32)의 얘기다.
"그럼 네가 담당해보지 않을래?"
축구선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에 한국 선수 프로필이 잘못돼 있는 걸 발견했다. 영국 본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그의 나이 열 다섯. 놀라운 점은 회사에서 그에게 '담당자'를 제안한 것. "리서치팀도 꾸렸는데, 제가 리더였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영국 본사에서는 제가 학생인걸 몰랐거든요. 나중에 다들 깜짝 놀랐더라고요."
이 일은 그의 인생을 흔들었다. 스포츠산업에 관심을 갖고 스포츠경영학과에 진학,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2% 부족했다.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회계사가 되기로 결심했죠. 외국의 경우 풋볼 머니 등에 대한 자료가 있고, 회계사가 스포츠 사업에 직간접적 관련을 맺기도 하거든요."
목표를 정했고, 회계사가 됐다. "처음에는 세무법인에서 기업회계 감사 및 M&A 가치를 평가하는 업무를 했어요. 그 뒤에 회사에 스포츠 관련 업무를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얘기했죠. 덕분에 스포츠 협회, 단체 등의 일을 하게 됐어요."
잘 나가던 회계사, 사표를 내다
2016년, 그는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는 영국으로 훌쩍 떠났다. 혈혈단신 떠나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스과정에 입학, 늦깎이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고민이 많았죠. 퇴사를 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회계사라고 하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신 분도 있고요. 맞아요. 모험이었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회계사가 된 것 역시 축구가 좋았기 때문이에요.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직업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관련 내용을 더 배우기 위해 사표를 내고 떠났죠."
FIFA 마스터스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의 축구스타, 박지성도 있었다. "2016년 8월부터 2017년 7월까지 1년간 공부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놀랐죠.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도 있었고요."
영국에서 돌아온 그는 2017년 10월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입사,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축구계에 몸담게 됐다.
6개월 차 마케터, K리그 인기를 꿈꾸다
"축구 관련된 일을 하니 좋죠."
그의 담당은 중계방송권 업무. "지난 2년 동안은 중계 채널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 등 제작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 중국 등 이웃 리그를 보면 뉴미디어 활용 콘텐트가 많아요. 우리도 경쟁력을 쌓아 결과물을 내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잡고, 카메라 포지션을 새로 잡는 등 업무를 진행하고 있어요."
축구를 팬으로 보던 것과 관계자로 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없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하는 일은 다른 곳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하고 있어요."
그의 꿈, 그리고 목표는 확실하다. 바로 K리그의 인기. "선진 리그를 보면 K리그도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이 K리그의 위기일 수도 있는데요, 앞으로는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