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열린 부산과 수원FC의 K리그 챌린지 34라운드에서는 보는 이들을 애잔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부산 공격수 이정협이 후반 11분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보여 준 세리머니가 그랬다.
이정협은 골을 넣자마자 부산 서포터스가 관중석 펜스에 걸어둔 고 조진호 감독의 사진 현수막으로 달려가 안긴 뒤 고개를 숙였다. 사진 속 조 감독은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활짝 웃고 있었다.
조 감독의 영결식(12일) 이후 처음 열린 경기에서 터진 첫골과 승리를 하늘에 계신 스승께 바친 것이다. 그라운드와 관중석은 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이정협은 경기가 끝난 뒤 "떠난 감독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고인이 살아계실 때 (골을) 못 넣다가 안 계실 때 골을 넣어서", "2위가 확정됐지만 선수들이 합심해 감독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 승리를 만든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조 감독이 비운의 생을 마감한 이후 잊을 수 없는 첫 선물을 안긴 이가 하필 이정협이다. 이정협과 조 감독의 같한 추억이 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이정협은 3일간 장례를 치르는 동안 동료 선수들과 함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조 감독의 빈소를 지켰다. 12일 발인에서는 맨 앞에서 조 감독의 마지막 길 운구를 맡았다.
|
그만큼 이정협은 조 감독이 무척 아끼는 제자였다. 올시즌 개막 이전 이정협이 부산에 잔류할지를 조기에 결정하지 못하고 협상이 장기화될 때 조 감독은 "꼭 필요한 선수"라며 구단을 통해 삼고초려를 했다. 결국 이정협 부모님과의 담판을 통해 붙잡는데 성공한 조 감독이 당시 이정협에게 한 약속은 "과거 대전에서 성공신화를 썼던 아드리아노 처럼 만들어 국가대표에 다시 발탁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였다. '슈틸리케의 황태자'였던 이정협은 울산에서 임대 선수로 뛰던 시절(2016년) 부상 등으로 딱히 보여준 게 없어 대표팀 입지가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조 감독은 일찌감치 약속을 지켰다. 이정협은 시즌 개막전부터 연속골 행진을 벌이더니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 7차전을 앞둔 3월 중순 A대표팀에 발탁됐다. 이정협과 조 감독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당시 이정협은 대표팀 소집을 하루 미루면서까지 경남과의 3라운드(3월 19일)에 출전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전방에서 싸움닭처럼 상대와의 몸싸움에 적극 가담하라는 감독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한 채 0-1로 전반을 마친 뒤 라커룸 미팅에서 조 감독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국가대표 차출됐다고 어깨에 힘들어가는거야? 그렇게 뛰라고 대표팀 다시 발탁될 수 있도록 팀에서 기회를 준 줄 알아?" 당시 조 감독은 "사실 욕도 좀 했다"고 말했다. 팀내 최고 간판선수인 이정협을 향해 불호령이 떨어지자 다른 선수들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정협은 후반에 동점골을 넣은 뒤 기분좋게 대표팀으로 향했다. 이날 이정협이 들었던 최고 수위의 쓴소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 감독에게서 받은 '사랑의 매'였다. 이후에도 이정협은 개인 생애 처음이자 K리그 챌린지 개막 최다 연속 신기록인 7경기 연속골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그랬던 이정협이 후반기 들어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다. 조 감독의 한 맺힌 마지막 경기였던 1일 경남전(0대2 패)에는 이전 경기에서의 경고누적 퇴장으로 인해 아예 출전하지도 못했다. 하필 시즌 첫 맞대결때 고인에게 욕을 바가지로 듣게 만들었던 경남이었다. 내용은 달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정협은 '자극' 후 '골로 화답' 하는 답안은 같았다.
이정협은 "너무 죄송하고 함께 했던 순간들이 그립다"고 했다. '더 심한 욕을 들어도 좋으니 옆에 살아만 계신다면…'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