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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참패, 쓰라렸다. 그러나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했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생애 첫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신태용 A대표팀 감독(47)에게 유럽 원정 2연전은 소중했다. 많이 배웠다. "스코어도 지고 경기내용도 지고 참패를 인정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약이 됐다"고 말한 신 감독은 확실한 믿음을 얻었다. 내년 러시아에선 유럽 평가전에서 드러난 문제점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동네북'이 된 수비 개선이다.
신 감독이 마련하고 싶었던 플랜 B인 '변형 스리백'의 성적은 낙제에 가까웠다. 신태용호는 유럽 원정에서 총 7골(러시아전 4골, 모로코전 3골)을 내줬다. 신 감독은 러시아와 모로코가 한국보다 전력에서 앞선다고 판단, 스리백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위험요소가 흥건했다. K리거가 소집되지 않았고 실험의 의미도 짙었다. 겉모습은 화려했다. 포어 리베로(스리백의 중앙 수비수이지만 공격 시에는 미드필더까지 전진하는 역할)를 활용한 변형 스리백이었다. 센터백의 중심축인 장현수(FC도쿄)의 움직임에 따라 수비 형태가 바뀌었다. 장현수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할 경우 포백으로 전환되고 센터백에 자리할 때는 스리백으로 변했다. 그러나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변형은 커녕 5명의 수비수들이 라인을 갖췄음에도 실점이 속출했다. 스리백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빠른 공수전환력과 수비력을 갖춘 윙백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선수들이 많았다. 공격수 출신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은 모로코전에서 우측 윙백으로 나서 자신의 열악한 수비력을 절감했고 중앙 수비 자원인 김영권(광저우 헝다)도 러시아전에서 좌측 윙백으로 활용됐다. 전문 측면 수비수인 오재석(감바 오사카과 임창우(알 와흐다)도 포백에 익숙하다. 애초부터 스리백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다. 특히 모로코전에선 경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두 골을 헌납하고 28분 만에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했다. 신 감독도 "초반에 그렇게 실점할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선수들의 경기력이 너무 떨어진 모습에 나도 놀랐다"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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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럽 평가전을 치른 신태용호에는 수비수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리더가 보이지 않았다. 스리백이든, 포백이든 모든 수비수들이 따로 플레이했다. 마치 '섬' 같았다. 4골이나 허용했던 러시아전 이후 '이런 수비로는 월드컵에서 어렵다'는 비난의 목소리는 스위스까지 전해지지 않은 듯했다.
아이러니컬하다. 월드컵에서 한국보다 뒤처지는 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강팀들을 대비해 준비한 스리백을 계속해서 써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아마추어 수준의 조직력과 전술 이해도를 갖춘 선수들에게 3년 전 브라질월드컵과 같은 참사가 재현될 것이 뻔하다.
신태용호는 수비 전술의 혼란만 가중시킨 채 10월이란 한 달을 날려버렸다. 공격은 둘째치더라도 수비 전술을 만드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우'의 플랜 B로 불리는 변형 스리백은 결코 단시간 내에 이뤄낼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다만 반드시 가능성을 끌어올려야 본선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