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젊은여우' 신태용-'올드폭스' 케이로스, 닮은 듯 다르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7-08-29 19:42


ⓒAFPBBNews = News1

신태용 A대표팀 감독(47)의 별명은 '여우'다.

선수시절부터 지능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다양하고 영리한 전술을 구사하며 '여우' 다운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신 감독과 운명의 대결을 펼칠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64)의 별명 역시 '여우'다. 케이로스 감독은 탁월한 전술가로 유명세를 떨쳤다. 뿐만 아니다. 베테랑 답게 상대를 자극하는 심리전에 능하다.

'젊은 여우' 신 감독과 '늙은 여우' 케이로스 감독, 닮은 듯 다른 두 감독의 머리싸움에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는 한국-이란 간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차전의 승패가 가려진다.


다른 선수생활, 다른 리더십

신 감독은 자타공인 'K리그의 레전드'다. 401경기에 나서 99골-68도움을 올렸다. 한번도 하기 힘든 K리그 3연패를 두번이나 이뤄냈고, 최초로 MVP를 두차례나 거머쥐었다. 월드컵에 나가지 못해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K리그를 홀로 지킨 그에게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호칭은 당연한 수식어다. 반면 케이로스 감독의 선수시절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모잠비크 아마추어 축구 클럽에서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케이로스 감독은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지도자로 변신했다.

2009년 성남의 감독대행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신 감독은 승승장구했다. 첫 해 리그 준우승을 이끈 신 감독은 2010년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11년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A대표팀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긴 신 감독은 이후 올림픽대표팀과 U-20 대표팀 감독직에 오르며 차세대 한국축구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신 감독 리더십의 중심에는 역시 '형님 리더십'이 있다. 선수시절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던 그는 지도자 변신 후에는 자율을 강조하고 나섰다.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에 '형님 리더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A대표팀 선임 과정에서도 '소통'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케이로스 감독은 '독불장군'이다. 케이로스 감독은 최고 수준의 스펙을 자랑한다. 스포르팅 리스본, 레알 마드리드, 맨유, 포르투갈 대표팀 등 명문팀은 물론 뉴욕 레드불스, 나고야 그램퍼스,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등 변방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감독으로 이렇다할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1989년 U-20 월드컵 우승과 스포르팅 리스본 시절 컵대회를 거머쥔 것이 최고 성적이다. 맨유 시절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의 오른팔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지만, 정작 감독의 중요한 덕목인 리더십은 뛰어나지 않았다. 지나치게 자신의 전술을 강조하며 맡는 팀마다 선수들과 불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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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지략, 닮은 심리전

두 감독의 가장 큰 공통점은 전술에 능하다는 점이다. 신 감독은 뛰어난 리더이자 전술가이다. 전술적 아이디어는 국내 감독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포백, 스리백 등 다양한 카드를 준비해 적재적소에 기용한다. 특히 짧은 패스를 기반으로 한 화끈한 공격축구는 신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다. 케이로스 감독 역시 전술적으로 대단히 명민한 감독이다. 2000년대 중후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박지성 등을 중심으로 맨유에 새로운 전성시대를 안긴 4-3-3 포메이션은 케이로스 감독의 작품이다. 이란 부임 초기만 하더라도 공격쪽에 공을 들였던 케이로스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기점으로 수비를 강조한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란은 이번 최종예선 8경기에서 단 한골도 실점하지 않은, 수비적인 팀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이번 대결은 수비에서 갈린다. 신 감독은 이번 이란전에 공격보다는 수비를 강조했다. '수비의 대가'와 수비로 맞서는만큼 전술 역량이 극명하게 대비될 수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심리전이다. 신 감독은 '밀당(밀고 당기기)의 귀재'다. 개성이 강한 젊은 선수들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확 잡는다. 또 상대의 도발에는 특유의 화술로 거침 없이 맞선다.

반면 케이로스식 심리전은 이란에서 꽃을 피웠다. 케이로스 감독은 공통의 적을 만들어 선수단을 독려하는가 하면, 밀당으로 이란축구협회와의 알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국과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최종전이었다. 당시 반드시 이겨야 본선에 오를 수 있었던 케이로스 감독은 최강희 당시 감독을 맹비난하며 선수들을 하나로 모았다. 경기 후 '주먹감자' 사태로 이어졌지만, 경기만 놓고보면 분명히 우리가 케이로스 감독의 심리전에 말렸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후에도 본인의 입지가 흔들릴때면 사퇴 카드로 이란축구협회를 압박하며, 본인 입맛에 맞게 팀을 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심리전은 이미 시작됐다. 케이로스 감독이 "훈련장 상태가 나쁘다"고 불만을 터뜨리자, 신 감독은 "우리가 이란 원정에서 고생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저 감사히 있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받아쳤다. 두 여우 모두 물러설 생각은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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