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격이었다.
'캡틴' 기성용(28·스완지시티)이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센터백으로 변신했다.
이날 기성용은 3-4-3 포메이션을 가동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시도한 전술 변화의 열쇠였다. 자신의 주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 대신 스리백의 중앙에서 '중국파' 홍정호(장쑤 쑤닝) 장현수(광저우 부리)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기성용에게 센터백 출전은 생소하진 않다. 지난 2013년 스완지시티 시절과 2014년 선덜랜드 임대 당시 컵 대회에서 센터백으로 뛴 적이 있다.
대표팀에서도 경험이 있다. 3년 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직전 신태용 전 코치가 대표팀을 이끌 때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센터백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기성용을 스리백 자원으로 활용한 건 두 가지 노림수였다. 우선 안정적인 빌드업이다. 최종 수비부터 공격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공수조율 능력이 탁월한 기성용에게 그리 어려운 숙제는 아니었다.
또 다양한 전술 변화를 실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 동안 포백을 고집해온 슈틸리케 감독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무색무취 전술로 맹비난을 받아왔다. 이 비난도 잠재우고 대표팀을 좀 더 전술적으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선 낯선 스리백 가동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기성용은 슈틸리케 감독이 만족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빌드업 시에는 군더더기 없는 전방 패스로 공격 작업을 도왔다. 전반 초반에는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는 롱패스를 손흥민(토트넘)에게 연결하기도 했다. 허를 찌르는 플레이가 돋보였다.
기성용은 뒤에만 머물지 않았다. 수비 시에는 최후방을 지키며 수비라인을 조율했지만 공격 시에는 적극적으로 스리백 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강한 압박에도 수비부터 물 흐르는 공격 전개를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기성용의 '멀티 능력'은 후반에도 드러났다. 4-1-4-1 포메이션으로 바뀌자 2선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볼 배급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문전 쇄도로 골도 노리는 모습도 보였다. 후반 32분 황일수(제주)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빠져나온 기성용은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의 키임을 증명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