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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의 골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록이었다. 우리는 손흥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손샤인' 손흥민(토트넘)의 역사적인 시즌이 마무리됐다. 숫자가 그의 활약을 대변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유럽챔피언스리그, FA컵, 유로파리그 등 총 46경기에 나서 21골을 폭발시켰다. EPL에서 34경기에서 14골을 터뜨리며 기성용 박지성이 갖고 있던 한시즌 리그 최다골(8골) 기록을 넘었고, FA컵에서는 5경기에서 6골을 넣으며 비공식 득점왕이 됐다. 유럽챔피언스리그(UCL)에서도 골맛을 봤다. 1985~1986시즌 '레전드' 차범근이 레버쿠젠에서 세웠던 한 시즌 최다골(19골) 기록을 31년만에 갈아치웠다. 올 시즌 두 번의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EPL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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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기류가 흘렀다. 2016년 리우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손흥민을 맞이한 것은 독일 컴백설이었다. 볼프스부르크가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손흥민이 처음으로 벤치명단에 이름을 올린 리버풀과의 3라운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신예' 조쉬 오누마를 투입하는 대신 손흥민을 끝까지 외면했다. 모두가 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묵묵히 준비에만 몰두했다.
그때 기회를 잡은 것이 스토크시티와의 4라운드였다. 왼쪽 날개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잉글랜드 입성 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골을 폭발시켰다. 모두 작품이었다. 기세를 탄 손흥민은 9월24일 미들즈브러전 2골, CSKA모스크바와의 UCL 1골을 포함해 9월 나선 4경기에서 5골을 몰아 넣었다. 이같은 맹활약을 바탕으로 손흥민은 9월 EPL 사무국이 선정한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아시아인 최초의 수상이었다. 이적설을 뛰어넘어 단숨에 팀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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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9월 이후 손흥민은 부침을 겪었다. 체력저하와 부상이 겹치며 주춤했다. 설상가상으로 중앙 공격을 강조한 스리백 전술이 자리잡으며 설 자리를 잃었다. 델레 알리, 해리 케인 등이 폭발하며 토트넘은 승승장구했다. 위기에 빠진 손흥민을 구해준 것은 FA컵이었다. 스쿼드가 두텁지 않은 토트넘은 FA컵에서 로테이션을 단행했다. 손흥민 입장에서는 이때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다행히 FA컵은 그에게 반전의 무대가 됐다.
애스턴빌라전이 시작이었다. 애스턴빌라전에서 골맛을 본 손흥민은 이후 FA컵에서 그간의 한을 풀었다. 위컴비전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4대3 극적인 승리를 만들더니 3월12일 밀월전에서는 아예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잉글랜드 무대에서 해트트릭을 한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손흥민은 FA컵 질주는 첼시와의 4강전 패배로 멈췄지만, FA컵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EPL에서도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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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의 단점은 명확했다. 오프더볼(볼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움직임)과 연계력(패스 등)이 떨어졌다. 공간이 좁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 손흥민은 볼터치가 A급으로 좋은 선수는 아니다. 2선 공격수가 안쪽으로 좁히는 토트넘식 3-4-2-1 포메이션에서 손흥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손흥민은 시즌 말미로 갈수록 진화했다. 케인의 부상을 틈타 원톱으로 나선 손흥민은 EPL식 공간 활용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정점이 왓포드전이었다. 손흥민은 미리 공간을 향해 움직이는 탁월한 움직임을 앞세워 두골을 터뜨렸다. 케인이 돌아왔지만 손흥민의 존재감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투톱 혹은 측면 공격수, 섀도 스트라이커로 더 다양하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손흥민은 4월에만 5골을 폭발시키며 또 한번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올 시즌 EPL에서 이달의 선수상을 두번 받은 것은 손흥민이 유일했다. 손흥민은 이제 완벽한 토트넘의 에이스로 자리매김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