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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허정무의 조언 "슈틸리케, 해외파들에게 숙제내세요"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7-04-13 21:28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인터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4.12.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인터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4.12.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62)는 이래저래 일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서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의 위업을 달성하고 대표팀 지휘봉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적잖은 러브콜 중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았다. 2012년 사임 이후엔 유소년 양성을 했고, 2013년부터 행정가로 변신했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이어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단장을 지냈다. 그리고 2015년 1월 '꽃길' 대신 '자갈길'을 받아들였다.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의 제안을 수용해 부총재를 맡았다. 허정무 부총재는 최근 A대표팀의 경기력과 성적 부진으로 경질 위기에 몰렸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대신할 수 있는 토종 지도자로서도 하마평에 올랐다. 요즘 K리그 현장을 누비고 있는 그를 1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기 현장에 자주 나타난다. 지도자와 부총재로 K리그 경기를 보면 뭐가 다른가.

지도자 때 보다 경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부총재지만 현장에도 가고, 전 경기를 분석위원들과 비디오로 분석도 한다. 지도자 때는 승패에 관련된 걸 위주로 봤다. 내 입장에서 우리 팀과 상대를 분석했다. 그러나 부총재가 되고 난 후에는 프로 축구 더 나아가 한국 축구 전체를 다 보고 생각하게 된다.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훨씬 객관적으로 경기를 보게 된다. 선수 뿐만 아니라 심판, 팬의 모습을 다 살핀다.

-프로연맹 부총재란 자리가 빛도 안 나고 힘든 역할인데,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이건 꼭 하고 싶었던 게 있나.

K리그의 신뢰 회복이다. 또 구단들이 거품을 빼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걸 보고 싶다. 힘든 일이지만 초석을 만들고 싶다. 나만 해서도 안 된다. 프로축구 종사자들이 모두 나서야 한다.

-우리 K리그는 잊을 만하면 안 좋은 일들이 생긴다. 2014년과 지난해 심판 매수 사건이 터졌고 최근엔 심판 오심 판정으로 한바탕 소동도 있었다.

과거 잘못한 걸 다 인정한다. 우리 프로축구는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다수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밖에선 연맹까지도 부패 집단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고 효과도 있다. 우리 연맹은 경기 후 비디오 분석으로 잘못된 판정이나 심판들이 놓친 선수들의 파울들을 찾아내고 있다. 이미 바로 잡은 것도 많다. 퇴장시킨걸 과하다고 판단해 감면해주기도 했다. 또 오심한 심판에 대해선 그만큼 불이익을 주고 있다. 현재 비디오판독시스템(VAR, 차량탑제) 시행에 앞서 테스트 중이다. 7월부터는 이 시스템을 통해 PK, 퇴장, 골, 오프사이드 유무를 좀더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신뢰를 하기 위해 정말 있는 거 없는 거 다 해보려고 한다. 그러니 제발 K리그 구단 관계자, 코칭스태프, 선수들도 심판의 판정에 너무 자주 강하게 항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수의 경우 제대로 본 정심에 대해서도 흥분해서 항의한다. 팬들도 덩달아 감정을 쏟아낸다. 이런 건 안 된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인터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4.12.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 구단들과 일을 함께 추진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뭔가.

K리그 발전은 모두가 함께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구성원인 각 구단의 관리자들, 쉽게 말해 사장님들과 단장님들 경영진이 너무 자주 바뀐다. 1~2년 만에 자꾸 바뀌면 안 된다. 멀리 보지 않고 당장의 성적에 집중하게 된다. 좀더 전문가들이 오래 일을 했으면 좋겠다. 또 핵심 관리자 중에 축구인 출신이 있어야 한다. FC서울이나 부산 아이파크 같은 경우 축구인 출신의 전문가들이 일을 잘 하고 있다. 부산 같은 경우 경기력도 좋고, 또 최근 홈도 구덕운동장으로 옮기는 등 매우 발 빠른 일처리를 하고 있다. 내 생각이지만 전문가 집단이 축구 클럽에 꼭 필요하다.

-일부에선 살림살이가 어려운 시도민구단을 프로연맹에서 재정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는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는 지 그 방법을 알려줄 수는 있다. 돈을 준다는 건 말이 안된다.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서로 고민을 통해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지난해 K리그 재정 건전성 마스트플랜을 세웠다. AFC(아시아축구연맹)도 와서 실사를 했다. 올해는 그걸 실천에 옮겨 나갈 것이다. 적자 규모를 최대한 줄여 나가려고 한다.

-연맹에서 구단들을 이끌고 나가는 입장인가.

참 어렵다. 우리는 구단들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다. 그래서 교육을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구단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경영진과 실무진을 순차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오는 5월에는 구단 경영진을 데리고 MLS(미국프로축구) 현지를 보고 올 것이다. MLS가 자랑하는 티켓 판매에 얼마나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또 어떻게 파는 지를 현지에서 보고 배우고 오겠다.(프로연맹은 매년 구단 경영진, 실무자들과 축구 선진국을 직접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요즘 현장에서 구단 경영진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 일에 쉬운 건 없다. 발로 뛰어야 한다. 뭐가 중요한 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구단은 선수 구성, 스태프 구성 등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한 구단은 비전문가를 스카우트로 썼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축구를 잘 아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준다. 사장 단장 중에는 축구를 아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또 다른 구단은 리그 참가 초반에 클래식으로 올라가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워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좀더 과감한 투자를 해보라는 조언을 해줬다. 우리는 구단이 요청해오면 뭐라도 도울 것이다.

-구단 걱정에 앞서 프로연맹 살림살이도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유럽은 연맹이 협회를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프로가 근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형적이다. 스폰서 같은 경우 이번에 KEB하나은행이 4년 140억원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KEB하나은행은 축구를 위해 정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 연맹도 스폰서들에게 후회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게토레이, EA도 스폰서로 참여해주고 있어 감사하다. 앞으로 책임감이 크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 쪼개서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토토 지원금도 줄었다. 축구를 통해 발생한 스포츠토토 지원금이 좀더 축구에 투자되도록 관계 당국과 협의하겠다.

-요즘 A대표팀 경기도 많이 보는 걸로 안다. 슈틸리케호의 경기를 보면서 걱정이 앞섰나.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은 통과할 것이다. 그런데 본선에 나가서 잘 하려면 같히 신경을 써야 한다. 내가 대표팀에 대해 말하는 건 주제 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선수들은 응집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겉멋이 좀 있다. 선수들 플레이에서 그런 게 나온다. 희생을 해야 한다. 나 혼자 튀려고 해서는 안 된다. 누구라고 선수를 거명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팀을 위해 뛰는 선수들이 많아야 한다. 내가 더 어려운 일을 하고 한발 더 움직인다는 정신이 필요하다.

-2010년 월드컵과 지금의 준비 상황이 다른가.

똑같다. 2002년 이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협회에서 요청이 있고 해서 소집 차출 기간이 조금 늘었다.

-그럼 선수 자원이 다른가.

선수 자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남아공월드컵에선 선수들이 신구 조화가 좋았다. 고참 이운재 이동국부터 영건 김보경 이승렬 같은 어린 선수들까지 있었다. 중간에서 박지성이 주장을 맡아 잘 했다. 정말 팀을 위해 희생하고 함께 뛰었다. 승리를 위해 한마음이 됐다.

-2010년 월드컵 경기를 자주 보나.

한두 봤을까 정도다. 좋았던 거 보다 나쁜 기억 때문에 안 본다. 자꾸 보면 그거에 취해서 봐야 할 거를 못 볼 거 같다.

-당시 가장 마음에 든 경기는.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전(2대0)이 마음에 든다. 우루과이전도 못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우루과이와는 다시 한번 하고 싶다. 우루과이는 그때가 절정이었다. 당시 4강을 갔다. 우리가 경기 내용에선 밀리지 않았다.

-그때 16강 가고 난 후 지휘봉을 계속 잡을 수도 있었는데.

그동안 2002년 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 말고는 제대로 물러난 감독이 없었다.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그런 의지가 컸다. 약간의 잘난 척을 해보고 싶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 선발을 두고 비정상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팀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권한이다. 그래서 판단을 존중해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슈틸리케 감독이 의외의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최근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정말 높았는데.

팬들의 비판이 강했다. 나는 같은 감독 입장에선 실랄하게 비판하는 건 삼가는 게 맞다. 그건 협회에서 기술위원들이 관리하고 판단해야 한다. 일반 팬이라면 가감없이 할 수 있다. 난 지금의 직책으로는 사실 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A대표팀을 지낸 지도자로 슈틸리케 감독에게 훈수를 둔다면.

그건 할 수 있다. 대표팀 감독을 할 때 선수 리스트를 작성한다. 대표팀의 인력 풀을 작성해서 하나 하나 체크해나간다. 핵심 멤버들은 항상 있다. 현재 우리 대표팀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선수 그 선수들에 대한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기술위원들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잉글랜드 독일 유럽으로 가서 직접 훈련하는 모습, 경기 하는 걸 보고 그 선수가 필요한 게 뭔지 숙제도 내주고,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조언도 해주고 소집할 때 진행 상황도 체크하고. 경기 없는 날도 훈련하는 거 보고…. 그래야만 소집을 했을 때 보다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전술적인 건 자신의 철학이 있으니 존중해야 한다.

-선수를 믿어야 하지만 좀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먼 나라 뉴스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선수들에게 직접 주문하고 체크하고 해야 한다. 그러면 선수들이 느끼는 수준이 다르다. 모였을 때 얘기하는 거와는 다르다. 나는 홍정호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하는 걸 봤다. 훈련할 때 한마디도 안 했다. 그래서 경기할 때 선수들과 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하라고 주문했다. 선수들을 믿어야 하지만 조금 더 세심하게 다가서야 한다.

-현재 A대표팀에선 박주영의 부재가 커 보인다.

선수가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부상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참 아까운 한국 축구의 재산이다. 지켜주고 오래 활용해야 한다. 어린 선수들이 자꾸 성장해서 튀어나와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U-20 대표팀의 이승우(19) 같은 경우 A대표팀에 언제 합류하는 게 맞나.

마냥 미룰 일이 아니다. 나이 스물이 어린 나이가 아니다. 이번 한국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에서 잘 한다면 바로 끌어올려도 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주역들을 봐라. 시드니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내가 발탁했던 박지성 송종국 이영표 김남일 설기현 이천수가 잘 했다. 노장들도 있었지만 젊은 선수들이 그들과 경쟁하면서 활력소가 됐다. 우리가 그 선수들을 몇년 우려먹었나. 2010년 넘게 뛰었다.

-젊은 선수들을 키울 복안이 있나.

지난 브라질월드컵을 보면서 생각했다. K리그 클럽팀의 22세 이하 선수들로 팀을 만들어 챌린지대회에 출전시키고 싶다. 우리 실정상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선수들이 경기 실전 감각이 떨어진다. 프로, 대학 어디로 가도 이 기간에 경기를 많이 못 뛴다. 이 기간에 이렇게 쉬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디어를 냈을 때 FC서울은 좋다며 당장 하겠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추진하려고 한다. 당시 문체부 당국자도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성용 이청용 손흥민 같은 선수가 한 명만 나와도 성공작 아닌가.

-마지막으로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갖고 있나.

당연하다. 태생적으로 승부사 기질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현장 감독들이 참 젊어졌다. 최순호 포항 감독이 잘 하고 있다. 경륜있는 지도자도 있어야 한다. 일괄적으로 너무 젊어졌다. 최강희 전북 감독이 오래 더 잘 했으면 좋겠다. 젊은 지도자들과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여러 곳에서 감독 러브콜을 받고 있는 걸로 아는데.

중국 쪽에서 받았다. 계약 조건이 좀 복잡하고 그렇다. 이렇게 저렇게 오고 있는데 확실한 오퍼는 아닌 것 같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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