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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의 해가 뜨겁게 떠올랐다.
한국 축구가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은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하지만 이후 월드컵은 먼 나라 얘기였다. 두 번째 기회가 오기까지 무려 3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1986년 멕시코 대회였다.
그로부터 다시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월드컵은 늘 우리의 안방을 들썩이게 했다. 적어도 30대까지는 한국이 빠진 월드컵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만큼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한국 축구의 소중한 발자취였다.
2017년은 또 한 번의 갈림길이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 여부가 올 해 가려진다. 성공하면 여느 때처럼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한국 축구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확률은 여전히 반반이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은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그러나 청신호가 켜진 적은 없다. 빨간불과 노란불을 오가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최종예선에서 조 1, 2위는 월드컵 직행, 3위는 플레이오프(PO)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슈틸리케호는 현재 A조 2위에 포진해 있다. 살얼음판이다. 1위 이란(승점 11·3승2무), 2위 한국(승점 10·3승1무1패),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9·3승2패)이 승점 1점차로 줄을 서 있다. 3위는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B조 3위와 PO를 거친 후 북중미 팀과의 대륙별 PO까지 치러야 한다.
절반을 더 가야하는 최종예선은 3월 재개된다. 일정상 지난해보다 더 험난하다. 원정에서 한 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자칫 한 발짝이라도 삐걱거리기라도 하면 30년간 쌓아 온 공든탑이 무너질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물론 대한축구협회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국 축구는 현재 과도기다. 외부의 거대한 자본과 실리, 명분의 틈새에서 중심축부터 흔들리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유럽파는 흔들리기 시작한 지 꽤 오래다. 선수는 그라운드에 서는 순간 가치를 인정받는다. 뛰지 않는 선수는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손흥민(토트넘) 등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볼 수 없는 날이 더 많다. 경기력 유지에는 치명적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소속팀 출전=대표팀 발탁'이라는 원칙을 깨며 중용하는 탓에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선수들도 생각을 고쳐야 한다. 프로에 데뷔한 후 현역 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십수년이다. 도전, 또 도전해도 문이 열리지 않으면 뛸 수 있는 구단으로 둥지를 옮겨야 한다. 해외에서 의미없는 방황은 한국 축구에도 큰 손실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경우 더 이상 실험할 시간이 없다. 시야를 더 넓혀야 한다. 기존 자원들로 벽에 부딪히면 전술 변화를 통한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고집보다는 상황대처 능력이 우선이다.
팬들의 전폭적인 응원도 필요하다. 개울이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를 만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함성과 힘이 소중할 때다.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는 가는 숨을 쉬고 있는 한국 축구가 다시 호흡할 수 있는 산소통이다.
2017년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월드컵과 한국 축구의 운명이 동시에 시위를 떠났다. 요행은 없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도를 걸으며 후회없이 뛰고,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