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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의 달콤함이 싹 가셨다.
상주 상무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2016년 한가위는 악몽이 됐다. 17일 오후 4시 상주시민운동장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던 상주-인천 간의 2016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30라운드가 '그라운드 사정'으로 연기됐다. 개보수가 마무리 되지 않은 그라운드에 장대비가 내리면서 엉망이 되자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프로연맹)이 대회 규정 30조 2항(경기장 준비부족, 시설미비 등 점검미비에 따른 홈팀의 귀책 사유로 인하여 경기 개최 불능, 또는 중지-중단 되었을 경우, 재경기는 원정팀 홈구장에서 개최한다)에 따라 하루 뒤인 18일로 '경기 연기'를 선언했다. K리그 사상 경기 세 번째, 2006년 포항-제주전 이후 10년 만의 연기였다.
이기형 감독대행과 인천 선수단이 프로연맹 측에 경기 강행을 통사정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상주전을 준비하기 위해 경기 하루 전 경북 구미까지 이동한 시간과 식비, 숙박비 등 소중한 비용을 허공에 날리게 될 판이었다. 뿐만 아니라 연휴 막바지 귀경길 정체를 뚫고 인천으로 돌아가 상주전을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피로도를 감안하면 다음날 경기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인천 측은 '그라운드 여건은 감수할테니 경기를 예정대로 치르자'고 프로연맹에 읍소했다. 잔디 보수 전문업체의 말만 믿었다가 작업 연기로 홈 경기를 못 치를 위기에 처한 상주도 앞이 캄캄하긴 마찬가지. 인천과 보조를 맞춰 경기 강행을 부탁했다. 하지만 프로연맹의 입장은 단호했다.
연휴 막바지 절정에 다다른 도로 정체는 상상 이상이었다. 평소 2시간30분 걸리던 인천까지 4시간 가량 소요됐다. 인천 선수단이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꽉 막힌 도로 속에 파김치가 된 선수들의 체력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이 감독대행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에 훈련장 조명을 켜고 훈련을 했다. 어떻게든 흐름을 유지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명절 연휴 휴식 대신 응원을 택한 인천 팬들은 도로에서 하루를 통째로 날리는 '재앙'에 단단히 뿔이 났다.
인천 구단 프런트는 '헛걸음의 허탈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홈 경기 준비에 총동원 됐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경기장 위탁운영권을 갖고 있어 준비가 그나마 수월했던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18일 인천축구전용구장을 찾은 프로연맹 매치 코디네이터도 "인천 프런트가 단 하루 만에 흠잡을 데 없이 경기 준비를 잘 해놓았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졸지에 원정길에 나선 상주도 급해졌다. 선수단은 비상이 걸렸다. 연휴 막바지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인천 내 호텔의 '빈방'을 수소문했다. 선수들의 '외박'도 문제였다. 군인 신분인 상주 선수단은 매 경기마다 국군체육부대에 '대회 출전 허가' 결제를 받고 영외 이동을 한다. 상주에서 경북 문경의 부대로 '당일 복귀'해야 하는 홈 경기에서 갑자기 '인천 원정 1박'으로 바뀌며 '급행 외박증'을 끊어야 할 처지가 됐다. 곽 합 국군체육부대장으로 향하는 '핫라인'을 급히 가동한 끝에 원정 채비를 마친 것이 오후 5시쯤. 인천이 먼저 겪어야 했던 '고속도로 지옥정체'는 보너스 악몽이었다. 연휴 끝 절정에 이른 정체를 온몸으로 받아낸 끝에 밤 10시가 되서야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 감독은 "잠을 4~5시간 밖에 못잔 것 같다"면서 "그래도 오늘 경기를 치른 게 다행이다. 구단을 대표해 인천에 사과하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라운드에 선 두 팀 모두 기운이 빠져 있었다. 90분 내내 헛심공방이 이어진 끝에 승부는 0대0으로 마무리 됐다. 인천과 상주, 누구도 웃지 못한 추석 연휴는 마지막까지 허무하게 마무리 됐다.
인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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