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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감동을 주네요."
인천 유나이티드 박영복 대표는 결국 뒤돌아 서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박 대표는 지난 31일 오후 5시쯤 구단 훈련장을 방문했다. 불과 2시간 전 인천 시내 커피숍에서 김 감독과 면담을 갖고 사퇴를 통보한 뒤였다.
사실 김 감독은 수원FC전 패배 직후 사퇴 통보를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10경기 남겨둔 시점인지라 시즌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자리에 연연하자는 게 아니라 팀을 최하위로 만들어 놓고 빠져나가는 게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와의 면담에서 이런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전했다.
하지만 시민구단의 특성, 쇄신의 필요성 등 구단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박 대표로부터 전해듣고 사퇴를 받아들였다. 구단 대표로 취임한 지 6개월 동안 누구보다 김 감독을 신임했던 박 대표로서도 가슴 찢어지는 일이었다. 구단의 입장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돌아선 김 감독의 뒷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고, 선수단 분위기도 걱정돼 훈련장을 찾았다. 들어서는 순간 박 대표는 깜짝 놀랐다.
이미 김 감독의 사임 뉴스가 온라인으로 퍼진 상황이었지만 훈련장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휴대폰을 라커룸에 두고 훈련중이던 인천 선수들은 감독 사퇴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김 감독의 의연한 모습이 박 대표의 눈에 들어왔다. 사임 통보를 받고도 아무런 내색없이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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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김 감독이 팀 훈련에 방해될까봐 나를 만나고 와서도 훈련 끝날 때까지 선수단에 티를 내지 않았다"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감독으로서 할 도리를 하겠다는 자세에서 김 감독의 인성이 얼마나 훌륭한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아팠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옆에서 조용히 훈련을 지켜보던 박 대표는 김 감독의 몇 마디 혼잣말에 결국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그는 훈련을 지휘하던 김 감독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와중에 선수들을 걱정하며 내뱉은 말이었다. '극장골의 사나이' 송시우를 바라보면서 "저 녀석 턱걸이 10개 하는 걸 보고 떠났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연마하면 팀에 보배가 되는데 빨리 성장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 피지컬이 부족한 송시우를 위해 김 감독은 턱걸이 10개를 채우면 선발로 기용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송시우는 현재 8개에 도달한 상태다.
송시우뿐 아니라 부상, 체력이 떨어진 선수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애정섞인 '잔소리'가 이어졌다. 훈련이 좀 느슨해진다 싶으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당장 내일 경기를 준비하는 지도자의 모습 같았다.
지난해 임금 체불이 심했을 때 월세를 구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던 김 감독은 떠날 때까지 후배들 생각만 하는 '형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5시30분 훈련이 마친 뒤 김 감독은 그제서야 스탠딩 미팅을 갖고 작별을 알린 뒤 의연하게 그라운드를 떠났다. 동그랗게 둘러 서 있던 선수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비보'에 망연자실했다. 한 선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선수들은 몇십분 동안 망부석처럼 멍하니 서있었다"며 "마지막 훈련까지 그렇게 이끌어주셨다니 참 훌륭한 스승이다. 내일도 모자를 눌러 쓴 감독님이 훈련장에 나오실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대표는 "김 감독의 심정을 누가 모르겠나.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선수들 걱정하는 걸 보면…, 3일 김 감독과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소주 한 잔 해야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스승이었던 김도훈 감독의 뒷모습은 쓸쓸하게 아름다웠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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