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의 센터서클]"정신차려 심판", 야유만 남은 슈퍼매치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6-05-01 18:33


◇곽희주의 옐로 카드에 서울 팬들과 선수들은 뿔났고, 수원은 안도했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후반 27분이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까지는 인저리타임을 포함해 20여분이 남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이미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랐다. 3명의 선수가 동시에 쓰러졌다. FC서울의 김동우와 수원 삼성의 오장은 이정수가 고통스러워했다. 김동우와 오장은은 근육 경련, 이정수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처절함이 그라운드를 휘감았다. 22명의 선수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마지막 젖먹던 힘을 모두 짜내 그라운드에 쏟아부었다.

라이벌전은 축구가 아닌 전쟁이다. 쓰러지고, 찢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사생결단이다.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과 남미도 라이벌전이 리그를 이끈다. K리그에선 슈퍼매치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미각이다. 팬들도 그 맛을 거부할 수 없다. 슈퍼매치의 경쟁력이자 K리그의 자존심이다.

뜨거웠던 올 시즌 첫 슈퍼매치가 막을 내렸다. 수원과 서울이 지난달 3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맞닥뜨렸다. 지칠 줄 모르는 투혼이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수원도, 서울도 웃지 못했지만 90분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흥분이 물결쳤다. 첫 대결은 1대1로 막을 내렸다. 전반 6분 수원의 산토스가 먼저 골문을 열었다. 권창훈과 염기훈, '쌍훈'의 그림같은 역습에 이어 볼은 산토스의 발끝에 걸렸고, 선제골로 연결됐다. 허를 찔린 서울의 반격도 불을 뿜었다. 기다리던 동점골은 후반 12분 터졌다. 다카하기의 로빙 패스를 받은 아드리아노가 상대의 방심을 틈타 기가 막힌 오른발 슈팅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승부는 다시 원점이었다. 서울의 파상공세는 계속됐다. 그러나 문전에서의 세밀함이 떨어졌다. 수세에 몰린 수원은 간간이 권창훈의 원맨쇼를 앞세운 역습으로 골문을 노크했지만 추가골을 터트리는 데는 2% 부족했다. 그렇게 두 팀의 전쟁은 막을 내렸다. 수원도, 서울도 아쉬움이 남았다. 2만8109명의 팬들도 탄성을 토해냈다.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첫 슈퍼매치의 주연 중 주연은 따로 있었다. 휘슬을 잡은 김상우 주심이다. 불문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판 판정은 존중돼야 한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하지만 오심이 반복되면 결국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주심은 이날 뭔가에 홀렸거나 아니면 작정한 듯 연방 엉뚱하게 판정을 내렸다. 수원에는 관대했고, 서울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 전반 41분 오장은(수원)의 고의성 짙은 핸드볼에 주심의 휘슬은 침묵했다. 고요한(서울)과 양상민(수원)의 계속되는 충돌의 피의자는 오로지 고요한이었다. 옐로카드의 기준도 없었고, 일률적인 어드밴티지 룰 적용을 바라는 것은 아예 사치였다.

이 정도였다면 그래도 팬들은 백번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주심의 '오심 이야기'는 더 남았다. 클라이맥스는 후반 36분이었다. 교체투입된 중앙수비수 곽희주(수원)가 아드리아노에게 뚫렸다. 골키퍼와의 1대1 찬스를 맞는가 싶더니 이내 추잡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곽희주는 1차적으로 아드리아노의 유니폼을 손으로 잡아챘다. 하지만 아드리아노의 질주를 멈추지 못하자 넘어지며 손으로 아드리아노의 발목을 잡았다. 아드리아노도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그라운드를 뒹굴며 땅을 쳤다. 비신사적인 행위가 도를 넘었다. 누가봐도 명백한 퇴장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심은 옐로카드로 상황을 정리했다. 곽희주가 카드 색깔을 확인한 후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 더 압권이었다. K리그는 판정을 통해 공격 축구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결국 거짓말이었다.


명색이 슈퍼매치다. 이날 경기는 공중파로 생중계됐다. 잠재적인 K리그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주심이 찬물을 끼얹으며 축제는 씁쓸한 뒷맛만 남겼다.

주심이 주인공이 돼서는 안된다. 그라운드의 주연은 선수들이다. 주심은 조연으로 물흐르듯 경기를 관장해야 한다. 물론 주심도 인간이기에 각자의 성향이 있다. 하지만 공명정대한 원칙에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모두가 합심해 쌓아온 공든탑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서울 팬들은 종료 휘슬이 울리자 "정신차려 심판"이라며 야유를 보냈다. 수원도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과는 번복되지 않는다. 올 시즌 첫 슈퍼매치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라운드는 상처로 남았다. 이 경기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선수들의 땀과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보상받을 수 없다. 야유만 남았을 뿐이다.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축구는 없다. 중요한 축이다. 하지만 그들은 성역이 아니다. 오심 논란은 경기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팬도 떠난다. 가뜩이나 위기인 K리그는 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심판 사회의 자성이 요구된다. 슈퍼매치를 통해 불거진 오심 논란을 심판 구성원 전원이 엄중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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