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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날개없는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포항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일찌감치 짐을 쌌다. H조 최하위로 떨어지며 16강행에 실패했다. 올 시즌 K리그 팀들 중 첫 탈락이다. 리그에서도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5경기 무승(2무3패)의 수렁에 빠지며 10위까지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경기력이다. 전매특허인 '스틸타카(포항식 패싱게임)'가 실종된 포항은 매경기 무색무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 최진철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포항은 고무열(전북) 신진호 조찬호(이상 서울) 김승대(옌벤) 등이 빠져나갔음에도 상위권에 들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명가' 포항은 갈수록 힘을 잃는 모습이다. 과연 포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포항은 주축선수들이 대거 떠나며 젊은 팀으로 재편됐다. 젊은 선수 육성이라는 중책까지 받아든 최 감독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 밖에 없었다. 심동운 문창진 등이 남아 있었지만 이들은 엄밀히 말해 황 감독 체제하에서 중용받던 선수들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스틸타카를 잘하던 선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최 감독은 국내외의 러브콜 속에서도 지켜낸 손준호를 중심으로 한 '창의적' 축구라는 카드를 꺼냈다. 원톱을 활용해 2선의 득점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청사진을 폈다.
하지만 이는 허공을 맴돌고 있다. 스틸타카에 최적화된 선수들은 아니었지만 '과거의' 축구에 너무 익숙했다. 최 감독이 강조하는 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이전 습관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화려했던 패싱게임은 사라졌고 패스 2~3번도 힘든 팀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팀을 지탱해준 손준호마저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다. 손준호 부상 이후 중원에 과부하가 걸리며 악재가 속출하고 있다. 24일 전남전에서 '신예' 김동현은 퇴장당했고, '캡틴' 황지수는 코뼈가 부러졌다. 이미 조수철과 오창현이 모두 부상에 신음하고 있는 포항에 남아 있는 전문 중앙 미드필더의 숫자는 '0'이다. 덩달아 지난시즌 최소 실점이었던 수비도 흔들리고 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다.
반전의 카드는 있다. 최 감독은 현 상황을 인지하고 빠르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팅을 통해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부상 악재에 발목이 잡혀있지만 19일 광저우 헝다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5차전 초반 15분간 보여준 경기력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얇아진 스쿼드를 보완해 줄 외국인선수 찾기에도 적극적이다. 당초 포항은 윙포워드, 섀도 스트라이커 영입을 노렸지만 중앙에 부상이 이어지며 중앙 미드필더가 가능한 선수로 대상을 넓혔다. 아시아쿼터 카드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조만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들이 가세하기 전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올 시즌 포항의 성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기존 자원 활용에 대한 변화도 꾀할 필요가 있다. 박선용도 중앙에서 뛸 수 있는 선수고, 박선주는 측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선수다. 안되면 고수하던 원톱 대신 포항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제로톱도 꺼내들어야 한다. 그만큼 지금 포항은 위기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