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거 감독 '퇴진론'이 씁쓸한 이유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6-03-21 21:20


ⓒAFPBBNews = News1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67)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벵거 감독은 무려 19년 동안 아스널을 이끌고 있다. 아스널의 중흥기를 이끈 지도자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올 시즌 벵거 감독을 둘러싼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갑다.

벵거 감독은 2003~200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무패 우승을 일궜다. 아스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EPL 정상 문턱을 밟지 못한 게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 동안 팬들의 인내심이 바닥 난 모양이다. 아스널 서포터스는 벵거 감독 퇴진을 외치고 있다. 심지어 경기장에 벵거 감독 경질, 사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등장하기도 했다. 벵거 감독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벵거 감독은 21일(한국시각) 영국 일간지 데일리미러 등 현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비판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중요한 시점에 회의적인 분위기 속에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 아픈 부분"이라고 운을 뗀 뒤 "이런 상황에서 왜 모두가 팀을 지지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판에 불만을 가진 적이 없다. 나는 오로지 최선을 다하려는 생각만 한다. 지난 19년간 구단에 공을 들였다. 외부 자금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일군 돈으로 팀을 성장시켰다"며 속내를 비췄다. 끝내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비판을 수용할 수 있다. 나는 대중들에 노출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비판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연일 비판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비록 오랜 기간 리그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스널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 특히 구단 재정적인 측면에서 벵거 감독의 기여도가 높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벵거 감독은 영입 자금, 선수 연봉 계약으로 구단과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 언제나 구단의 장기적 관점과 궤를 함께하려 노력하는 감독이다. 벵거 감독 지지자는 이 점을 높게 평가한다.

장기간 EPL 무관은 허전한 공백이다. 하지만 벵거 감독의 아스널은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에 16년 연속 진출했다. 구단 재정도 탄탄히 다졌다. 축구 재정 전문 블로그 스위스 럼블에 따르면 아스널의 현금 보유량은 1억5900만파운드(약 2732억원)다. 세계 최고다. 맨유(약 2673억원), 레알 마드리드(약 1439억원) 등 유수의 구단들을 뛰어 넘었다. 중요한 업적이다. 언젠가 벵거 감독은 아스널 사령탑에서 물러날 것이다. 아스널은 벵거 감독의 알뜰함 덕에 '새판짜기'에 충분한 자금력을 갖췄다.

물론 리그 우승을 바라는 것이 비뚤어진 팬심은 아니다. 하지만 구단의 전설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벵거 감독은 부족함이 없다. 예를 들어 한 팀에서 19년을 뛴 선수의 경기력이 성에 차지 않으면 팬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적어도 현수막을 들고 계약 해지를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존중이 있기 때문이다. 벵거 감독을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형국이 씁쓸한 이유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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