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식'이천수"인천의 아들,인천서 은퇴하는 난 행운아"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11-28 15:05


"안녕, 이천수."

이천수가 28일 인천전용구장에서 펼쳐진 K리그 클래식 최종전 인천-전남전 하프타임, 은퇴식을 갖고 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서포터스들이 한목소리로 이천수를 연호했다. '풍운아를 품은 우리는 행운아'라는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인천유나이티드 단장에 이어 이천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길을 이끌어준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총재, 이학재 의원이 꽃다발을 전달했다. 사랑하는 딸 주은양이 이날 시축에 나섰고, 기념촬영도 함께했다. 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감독도 꽃다발을 전달하며 축구선배로서 후배의 앞날을 축복했다. 악연으로 얽혔던 전남전에서 은퇴식을 하게 됐다. 팬들의 연호에 이천수는 목이 메었다. "마지막 경기 제 은퇴식을 보러 와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축구를 했고 마지막에서 인천에서 할 수 있어 행운아"라고 했다. "인천 시민들 미추홀 보이스, 서포터스들이 있어 영광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인천의 아들로서 인천시민들이 더 재밌게 축구를 즐기시도록 밖에서 더 잘 서포트하겠다"고 약속했다. "제 2인생을 사는데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했다. 마지막 코멘트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외침에 서포터스들이 "사랑한다! 천수"라고 뜨겁게 화답했다.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이었다. 부평고 시절 '천재'로 각광 받았던 이천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에 출전하면서 기량을 인정 받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4강 신화에 일조하면서 각광을 받았다. 기량 뿐만 아니라 톡톡 튀는 '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3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 입단하며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소시에다드와 누만시아를 거치면서 적응에 실패, 결국 울산 현대로 복귀하기에 이른다. 2005년엔 울산 현대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 첫 경기였던 토고전에서 골맛을 보는 등 재기하는 듯 했다. 2007년 페예노르트(네덜란드)에 입단하면서 다시 해외무대의 꿈을 펼치는 듯 했으나, 2008년 1월 수원으로 임대되면서 날개를 펴지 못했다. 수원 시절 임의탈퇴를 거쳐 2009년 1월 전남에 입단해서도 FC서울과의 개막전에서 '주먹감자' 세리머니로 징계를 받았고, 알나스르(사우디아라비아) 이적을 둘러싼 팀 내 마찰 끝에 또 다시 임의탈퇴 징계를 받았다. 2010년에는 오미야(일본)를 통해 재기를 노렸지만, 이듬해 팀을 떠나면서 무적 신세가 됐다. 이천수는 꾸준히 K리그 복귀를 염원했으나, 임의탈퇴 징계가 풀리지 않으면서 2년 간 '야인' 신세였다. 자숙의 시간을 거친 이천수는 2013년 고향팀 인천 유니폼을 입었으나, 그해 10월 한 술집에서 폭행시비에 휘말리는 등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성숙한 자세 속에 임금체불 등으로 악전고투하던 인천 선수단의 든든한 맏형 역할을 해왔다. K리그 통산 기록은 179경기 46골-25도움, A매치 기록은 78경기 10골이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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