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10개월 만에 광양 땅밟은 이천수, 부담스러웠던 45분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5-04-05 17:51



세월이 많이 흘렀다. 5년 10개월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광양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악동' 이천수(34·인천) 얘기다.

이천수는 5일 전남과의 K리그 클래식 4라운드에서 후반 시작하자마자 박세직과 교체돼 광양축구전용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천수의 뒷 모습이 보이자 전남 팬들은 웅성댔다. "우~"라고 야유를 보내던 팬들은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키려 왔냐"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은 모습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동료들과 몸을 풀고 있던 이천수를 만났다. "부담된다"며 어렵게 입을 연 이천수는 "당시에는 이렇게 다시 만날 줄 모르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가 사죄받을 수 있는 길은 진심을 다한 플레이"라고 덧붙였다. 또 "마음의 짐을 벗기 위해 최고의 플레이를 선사하겠다"고 했다.

이날 김도훈 인천 감독은 이천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선발 대신 교체명단에 포함시켰다. 김 감독은 "미팅을 했는데 부담이 있더라. 그래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고 설명했다.

노상래 전남 감독은 "시간이 많이 흘렀다. 본인이 바뀐 모습을 그라운드 안팎에서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동안 이천수에게 광양은 부담스러운 도시였다. 2009년, 기행을 펼쳤다. 수원에서 전남으로 임대된 뒤 열린 K리그 개막전에서 자신의 오프사이드 파울을 선언한 부심을 향해 '주먹감자'를 날려 징계를 당했다. 같은 해 중순에는 대형 사고를 쳤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나스르 진출을 추진하다 전남 측과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팀 코치와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결국 전남은 상식 밖의 행동을 한 이천수를 임의탈퇴 신분으로 공시했다. 이천수는 전남의 동의없이 K리그에서 뛸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결국 K리그를 떠나야 했다. 사우디와 일본 오미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다 2013년 국내 유턴을 택했다. 전남은 요지부동이었다. 전남은 기업 이미지를 손상시킨 이천수를 풀어줄 마음이 없었다. 이천수는 발품을 팔았다. 전남의 홈 구장을 찾아 팬들에게 직접 고개숙여 사과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동정 여론이 일었다. 이에 전남은 이천수가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다시 열어줬다.

이 때 전남은 임의탈퇴를 철회하면서 맺은 조항이 있었다. 이천수가 2년간 전남 원정 경기에 뛰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유효기간은 지난해까지였다. '족쇄'는 올 시즌부터 풀렸다.


이날 이천수는 멀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측면 공격은 물론 공격의 물꼬를 트는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도 수행했다. 남다른 킥 능력은 트레이드마크였다. 후반 17분에는 날카로운 프리킥을 문전에 배달했다. 하지만 승리의 파랑새는 아니었다. 인천은 후반 28분 이종호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대1로 무릎을 꿇었다. 인천은 첫 승 사냥에 실패했고, 전남은 3무 뒤 시즌 첫 승을 거뒀다.

광양=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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