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 "해외리그-대표팀 감독이 되는 게 목표"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5-03-04 12:09


설기현 선수 은퇴식 기자회견이 4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렸다. 설기현이 은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 인천 유나이티드와 2년 계약을 체결했던 설기현은 올 연말에야 계약이 만료되지만 양해를 구하고 제2의 축구 인생을 걷게 됐다. 설기현은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 직무대행을 맡게 된다.
설기현이 아직 B급 지도자 자격증밖에 없어 직무대행으로 팀을 이끌며 올해 안으로 A급 자격증을 취득할 계획이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02년 한-일월드컵 스타 설기현(36)이 4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소회와 포부를 밝혔다.

설기현은 이날 기자회견 서두에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며'라는 소감문을 발표했다.

"태극마크를 반납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대한축구협회장 등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문을 연 그는 "갑작스런 은퇴 결정으로 황망할텐데 나의 결정을 존중해 준 김도훈 감독과인천 구단에 죄송하고도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갑작스런 은퇴 결정으로 인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열었다. "갑작스런 은퇴 결정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것 잘 알고 있다. 사정이 어찌됐든 매끄럽지 못한 모습으로 비쳐졌다면 달게 받아들이겠다. 다만 갑작스런 조기 은퇴가 나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운 퇴장'이 나에게는 불가피하게,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설기현은 대학팀 감독으로 전격 변신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느 시점에 은퇴를 해야 할지도 항상 생각했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면서 "나름대로 갖게 된 지도철학과 유럽축구와 많은 지도자를 경험하면서 배워온 것을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이것을 실현하려면 감독이라는 임무부터 먼저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려면 현실적으로 대학팀 감독이 자신에게 가장 적합했고 때마침 성균관대로부터 간절한 요청이 들어와 결단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강릉으로 이사한 뒤 축구를 시작했던 10세부터 파란만장한 축구인생을 잠깐 되돌아 본 설기현은 "많은 분들께 감사하지만 특히 '아버지 없는 자식이란 소리 듣지 않도록 똑바로 살라'고 훈육해주신 어머니와 힘든 유럽생활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와 아들, 딸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설기현은 아내 윤 미씨에 대해 "내가 볼 때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며 진한 가족애를 나타내기도 했다.

설기현은 끝으로 "지금 지도자로 시작하지만 훗날에는 해외 리그나 외국 대표팀의 감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설기현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선수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유럽(벨기에)에 처음 진출했던 기억이 난다. 입단식 전날 일요일이었다. 근처 공원에서 운동을 하다가 현지 주민과 대화를 잠깐 하게됐는데 앤트워프 구단에 입단한다고 하자 '왜 그런 경기못하는 팀에 가느냐'는 걱정스런 충고를 듣고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2년 월드컵 때 훌륭한 팀-감독과 함께 운동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프리미어리그 원더러스에 입단해 치른 첫 경기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전반 20분 만에 0-2 뒤지게 되자 경기에 뛰면서도 무척 후회했다. 나중엔 극적으로 3대2로 역전승했을 때 정말 기뻤다. 평소 과묵한 코펠 감독이 그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봤다.

-대부분 은퇴한 2002년 멤버들 보면서 감회가 다를텐데.

많은 선배들이 지도자를 하고 있다. 그런 선배들이 잘 하고 있는 모습이 후배들에게는 많은 영감을 준다. 그들이 잘 하고 있으니 우리도 자신감을 갖고 또다른 후배들을 도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지금도 선수생활하는 하고 있는 2002년 멤버들도 나중에는 성공하는 선배들의 뒤를 따르게 되지 않을까.

-대학축구를 맡게 되면 펼치고 싶은 지도철학이 있나.

어제 (성균관대)선수들을 만나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대학 선수지만 프로의식을 가져라'는 것이었다. 내가 경험한 유럽에서는 20세 이상이면 프로를 생각하는 시기다, 대학 선수여서 스스로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부족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 많다. 환경은 프로가 아니지만 마음은 항상 프로라는 생각으로 훈련하도록 지도하고 싶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항상 준비하는 프로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경기장에 나가서 자신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축구를 펼칠 수 있고, 그 자리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나가는 선수를 키우고 싶다.

-지도자로서 앞으로 가장 닮고 싶은 감독이 있나.

다양한 감독 경험을 해봤는데 감독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더라. 다양한 감독들의 장점을 뽑아서 접목시키고 싶다. 사실 닮고 싶지 않은 감독도 있는데 언급하지는 않겠다.

-갑자기 지도자로 전향하면서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갑작스런 은퇴에 나도 답답하다. 내가 감독으로 시작하기에 적합한 팀이어서 급박하게 결정하게 됐다. 사실 은퇴를 결정한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어서 인천 구단 소속 선수로서 감독, 구단측과 진지하게 상의했는데 너무나 흔쾌히 보내준다고 하더라. (농담조로)사실 이 부분은 서운하기도 했다. 지도자로서 능력은 앞으로 내가 보여줘야 할 몫이다. 부족하다면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하고 반대로 성공한다면 나의 축구철학을 검증받을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

인천 구단에 입단하면서 이젠 은퇴를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부터 평소에 주변 사람들과 미래를 얘기하면서 나는 지도자를 하면 감독부터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성균관대로부터 제안이 들어와서 지금이 내가 생각한 기회라고 여겼다. 나의 원래 나이는 38세다. 이런 나이면 선수로서 할만큼 했다고 본다. 김도훈 감독이 운동을 많이 시키는 스타일인데 힘들어도 억지로 버틴 적이 있다. 김 감독이 나를 많이 배려해주셨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전지훈련을 거치면서 '올해가 나에게 마지막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커졌고 그에 따른 마음의 준비를 하던 차에 기회가 와서 1년을 억지로 버티느니 새로 시작해보자고 결심했다. 갑작스런 은퇴로 야기된 논란은 앞으로 내가 열심히 보여주는 것으로 만회하고 싶다.

-2002년 이탈리아전 동점골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그 골은 '설기현' 하면 가장 빠지지 않는 골이다. 내가 넣어 본 골 가운데 선수로서 가장 큰 골이었다. 당시 안더레흐트에서 적응하지 못한 가운데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안더레흐트 감독도 언론 인터뷰에서 나에 대해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선수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졌다는 얘기를 한 게 기억난다. 히딩크 감독 역시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훌륭하고 대단한 분이었다.

-지도자 생활을 왜 감독부터 시작하려고 하는가.

내가 하고 싶은 축구가 있다. 정리도 해놨다. 코치를 하면 그런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니었다. 유럽에서 오랜 기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굳이 유럽으로 코치 연수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험을 전수하려면 감독으로서 나의 팀을 이끄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지도자로서 목표는?

이제 지도자로 시작하지만 유럽에서 처음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다. 당시 나는 향후에는 독일, 잉글랜드 리그로 진출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여기서 시작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그 경험을 통해 선수 때 힘들 것이라고 여겼던 유럽에 진출한 것 처럼 꿈을 이루고 싶다. 사실 감독으로서 유럽까지 진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해외로 진출해서 그 나라의 좋은 팀이나 대표팀을 지휘하고 싶은 큰 꿈이 있다. 너무 원대한 꿈이어서 어이없어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꿈을 이루지 못해도 그 자체로 경험이 될 수 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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