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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도 축구였다.
대한민국 축구인들의 축제, 2015년 축구인 자선 골프대회가 26일 경기도 용인의 골드컨트리클럽(파72)에서 성황리에 끝났다. 축구화와 축구공 대신 골프화와 골프채를 들고 필드로 나선 축구인들의 골프,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골프철학은 축구와 동색 혹은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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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인들이 모인 만큼 이날 축구인 자선 골프대회에서는 축구 얘기가 주를 이뤘다. 24일, 25일 열린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가 화두였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코치들을 다 데리고 나왔는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둬 가벼운 마음"이라면서 "1차전에서 이겼으니 오늘도 잘 쳐야 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위기의 순간에도 ACL 스토리가 등장했다. 11번홀(파4)에서 친 티샷이 아웃오브바운스(OB)가 되자 한 조에서 플레이를 펼치던 최만희 대외협력기획단장은 "2대1 역전승 거뒀으니, 이번에도 역전해"라며 응원했다. 이에 신연호 단국대 감독이 "ACL에서 수원이 (K리그의) 유일한 승자였다"고 하자 서 감독은 "승리 기운을 이어가야 하는데,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네"라며 시야에서 사라진 공을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반면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일본)을 상대로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 전북의 최강희 감독이 퍼트를 쏙쏙 집어넣자 김호곤 부회장이 '철퇴'급 멘트를 날렸다. "선수들이 이렇게 골을 넣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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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명 참가자의 표정도 각양각색이었다. 윤정환 울산 감독은 "머리 식히러 나왔는데 공이 잘 안 맞아서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다"며 한 숨을 쉬었다. 그러나 10m 이상의 퍼트를 두 차례나 성공시킨 뒤 "퍼트 감각이 좋다는 얘기를 예전부터 들었다"며 큰 웃음을 지었다. '프리킥의 달인' 고종수 수원 코치는 2번홀(파3)에서 아이언 티샷을 앞두고 대뜸 킥 모션을 취했다. "골프공이 아니라 축구공이었으면 왼발로 감아차서 '온그린' 시킬 수 있을 텐데…." 고 코치는 2번홀에서 원 온에 성공한 뒤 투 퍼트로 파를 기록했다. 고 코치의 하소연을 전해들은 서정원 감독도 말을 보탰다. "나는 정지된 볼은 잘 못차겠던데, 빠르게 움직이는 볼은 잘 찰 수 있다." 현역 시절 날카로운 측면 돌파를 선보였던 '날쌘돌이'다운 말이었다. '유비' 유상철 울산대 감독은 '컴퓨터 퍼트'로 실력을 과시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박인비와 똑같은 퍼터를 사용한 유 감독은 폼마저 박인비와 같았다. 정확한 퍼트에 김도근 상주 코치가 "'유비'가 '인비'처럼 퍼트를 하네"라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유 감독은 "독학한 골프다"라며 자세를 낮췄다. 동반자들은 "독학이 아니라 독한 골프"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편, 축구인 자선 골프대회에서는 '숨은 고수'들이 숨겨둔 발톱을 꺼내 들었다. 고종수 코치는 '괴력'을 발휘, 9번홀(파4)에서 241m의 드라아버 티샷을 날려 '롱기스트'에 등극했다. 최재익 서울시축구협회장은 14번홀(파3)에서 아이언 티샷을 홀컵 1.8m에 붙여 '니어리스트' 타이틀을 따냈다. 김기동 올림픽대표팀 코치는 1오버파 73타로 '메달리스트'의 주인공이 됐다. 이운재 올림픽대표팀 골키퍼 코치는 '이글상'을 따냈다. 이 코치는 18번홀(파4)에서 115m 거리의 두 번째 샷을 홀컵에 그대로 넣어 '샷 이글'을 기록했다. 이 코치는 "앞 바람에 오르막 그린이라 한 클럽(9번 아이언) 길게 잡고 쳤는데 운 좋게 들어갔다"며 웃음을 보였다. 팀 훈련 중 발을 다친 김도근 상주 코치는 절룩이며 18홀을 완주, 감투상을 수상했다.
용인=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