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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 베테랑의 품격이 빛났다.
슈틸리케호는 답답한 흐름을 이어갔다. 슈틸리케가 자랑하는 손흥민(레버쿠젠) 이청용(볼턴)은 그라운드에 없었다. 대신 꺼내든 플랜B는 쿠웨이트의 밀집수비에 꽉 막혔다. 도무지 골을 만들 구멍이 보이질 않았다. 처진 분위기 속 '차미네이터' 차두리(35·서울)의 눈빛이 번쩍였다. 전반 36분, 트레이마크 같은 질풍 같은 드리블로 오른쪽 측면을 뚫어냈다. 2명의 수비수가 추풍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이어 자로 잰듯한 크로스로 남태희(레퀴야)의 헤딩골을 만들어냈다. 골은 남태희가 넣었지만, 차두리가 90% 이상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차두리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아직 한 경기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부담 느낄 시점은 아니다. 체력적인 면에선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였다. 24세의 장현수, 25세의 김영권(광저우 부리), 23세의 김진수(호펜하임) 등 자신보다 10세 이상 어린 후배들과 포백을 이루면서 가장 정력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3일 전 71분을 소화한 노장처럼 보이질 않았다. 후배들이 고개를 숙이면 박수를 치며 큰 목소리로 독려했다.
차두리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우승컵을 들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게 그의 목표다. 그는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고참은 경기력이 안되면 결국 팀에는 짐이다. 100%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두리는 팀이 가장 어려울때 그의 100%를 보여줬다. 차두리의 전성기는 계속되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