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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딴 전북, 표정 관리에 진땀 뺀 이유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4-11-09 16:57


◇전북 선수단이 8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제주와의 2014년 K-리그 클래식 35라운드에서 조기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팬들 앞에서 우승 기념 현수막을 펼쳐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귀포=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오늘 준비한 건 현수막 한 개 뿐입니다."

8일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와 맞붙는 전북은 이날 승리하면 남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K-리그 클래식 대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에 아랑곳 않고 달려온 전북 팬들은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전북'을 외쳤다. 그런데 경기 시작 직전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전북 구단 관계자들의 표정은 미묘했다. 애써 속내를 감추고 싶은 듯 주변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평소 호탕하게 선수들 알리기에 앞장섰던 김욱헌 전북 홍보팀장도 이날 만큼은 '침묵모드'였다.

사연이 있었다. 전북은 지난해 10월 19일 안방인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포항과 FA컵 결승전을 치렀다. 3만여명의 홈 팬 앞에서 치른 승부차기 끝장승부에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환호하는 포항 선수단의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김 팀장은 "당시 포항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진 않더라"면서 "제주 원정을 떠나기 전부터 별도의 우승 세리머니 없이 조용히 복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홈에서 열리는 경기서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그 때 홈 팬들 앞에서 환호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전북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제주를 눌렀다. 전반 27분 레오나르도의 첫 골을 시작으로 후반 4분과 41분 이승기, 이상협이 잇달아 골망을 갈랐다. 제주는 전반 36분 이재성의 등을 무릎으로 가격한 알렉스가 퇴장당한 뒤 급격히 무너졌다. 제주 선수들 뿐만 아니라 팬들도 전북이 골을 넣을 때마다 어깨가 처졌다. 일부 제주 팬은 그라운드 바로 앞 관중석까지 내려와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안방에서 남의 잔칫상을 차려준다는 것에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전북 벤치 뒤에서 '전북'을 외치던 한 중년 팬이 제주 팬들의 거센 항의 속에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다가 경기장 안전요원들의 만류로 자리를 뜨는 모습도 보였다.

3대0 승리를 확정 지은 뒤 전북 선수들은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구단 관계자들은 '잽싸게' 다가가 현수막을 펼쳐들고 '빨리 가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전북 선수들은 원정 온 팬들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포즈를 취한 뒤 재빨리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토록 원하던 별을 달고도 마음껏 웃지 못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최강희 전북 감독도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왜 이렇게 웃질 않느냐'는 질문에 "남의 집이니까 우리 집에서 웃고 싶어 아끼고 있다"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승리의 주역 이승기는 "우승을 하면 정말 좋을 줄 알았는데, 우리(선수)만 좋아하는 것 같다. 라커룸에 들어가니 금새 분위기가 차분해지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5일 오후 2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전북-포항 간의 클래식 36라운드에서 전북에 우승 트로피를 수여한다. 제주 원정에서 마음껏 웃지 못한 전북은 과연 이날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서귀포=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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