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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째 동행이다.
처음 전주 땅을 밟을 때만 해도 전북은 변방이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기적같은 우승을 달성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우승 후유증 속에 중위권을 맴도는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하는 듯 했다. 과감한 리빌딩을 통해 무너지지 않는 팀을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여 2009년 처음으로 별을 땄다. 5년이 지난 현재, 전북의 가슴에는 3개의 별이 달리게 됐다.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써내려 간 전북의 역사다.
최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올해가 전북 창단 20주년이다. 모기업에서 선물 받은 세계적인 클럽하우스를 입주한 첫 해이기도 하다"며 "선수들의 각오와 노력이 좋은 성과로 귀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팀을 비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수들이 제 몫을 해줬고, 팬들의 변함없는 성원도 빼놓을 수 없다.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날 경기서 고전이 예상됐던 제주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 속에 3골차로 꺾은 것을 두고는 "선수단 분위기가 워낙 좋았다. 이틀 전 훈련에서 내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오늘 경기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라 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해줬다. 결과 뿐만 아니라 내용도 좋았다. 점점 상승세를 타는 것 같다"고 흡족해 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홈에서 2경기가 남았다. 좋은 경기를 펼치면서 시즌을 마무리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감춰둔 속내도 꺼냈다. "사실 우승보다는 오늘 실점을 할까 걱정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무실점 연승을 의식하고 있었다."
전북은 올 시즌 개막 전부터 절대1강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동국, 레오나르도를 위시한 스쿼드의 힘이 주목을 받았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중위권을 오가면서 명성에 걸맞지 않는 모습을 드러내던 전북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휴식기 뒤부터 약진, 결국 정상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올 시즌을 시작할 때 1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워낙 많은 선수들이 바뀌었다. 두 달간의 동계훈련 기간 조직력이 완성될 것으로 봤는데, 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를 병행하면서 기복이 심했다"며 "월드컵 이후 리그에만 집중하면서 조직력이 좋아졌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경기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최 감독은 "서울전, 전남전에 잇달아 추가시간 실점을 했던 게 고비였다. 심적으로 쫓길 수 있었던 상황에서 안정을 찾은 게 여기까지 온 힘이 아닌가 싶다"며 "부상 등 특이사항만 없다면 남은 승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우승은 매 순간 특별하다. 하지만 최 감독은 A대표팀 사령탑직에서 복귀한 지 1년여 만에 일군 세 번째 우승에 좀 더 애착을 갖는 듯 했다. 최 감독은 "작년에 팀에 복귀한 뒤 욕심을 냈다. 선수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고, 쫓기듯이 팀을 운영했다"며 "나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었는데, 선수들이 나를 찾아준 것 같다.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 하면서 내게 믿음을 준 게 안정을 찾게 된 요인이었다. 그런 부분이 앞선 두 번의 우승보다 크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잘 해줬다. 특히 희생을 꼽을 만하다. 많은 주전급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희생해줬다"며 "김남일이 적지 않은 나이에 입단해 어려움이 컸다. 후반기 신형민이 합류하면서 큰힘이 됐다. 주장으로 팀을 잘 이끌어 준 이동국도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리그 챔피언이 된 날이었지만, 최 감독은 좀처럼 미소를 짓지 않았다. 그는 "남의 집이니까 우리 집에서 웃고 싶어 아끼고 있다"고 농을 치면서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서귀포=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