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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스리백의 시대가 열렸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전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스리백의 부활이다. 양쪽 윙백들까지 포함해 파이브백으로 전환되는 스리백은, 포백 시대의 끝을 알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번 대회에서 킥오프시 포진도에서 스리백과 포백으로 나선 팀들간 맞대결에서 스리백을 구사한 팀이 8승 2무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네덜란드를 제외하고 16강이 힘들 것이라고 전망되던 칠레,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 16강의 문턱을 넘은 것은 바로 스리백의 힘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스리백은 과거와 그 성질이 다르다. 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구시대의 유물로 평가받던 스리백은 이번 대회에서 역으로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용되기 시작했다. 공격진의 움직임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 측면 공격수는 돌파 후 크로스를 올리는데 집중했다. 움직임이 터치라인 쪽으로 제한됐다. 하지만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등 변종 윙어들이 득세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크로스 대신 슈팅으로 공격을 마무리했다. 원톱은 제로톱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미드필드 플레이를 펼친다. 9번(스트라이커)과 10번(공격형 미드필더)의 사이에 위치한 공격수라는 뜻의 '9.5번'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가 대표적인 유형이다. 결국 스리톱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투톱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포백으로 이들을 막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 이를 막기 위해 스리백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형태의 변화 역시 한 몫했다. 최근 득점 장면은 단순한 크로스에 이은 헤딩보다는 측면을 무너뜨린 후 가까운 쪽 포스트에서 '짤라먹는' 커트인이 주를 이루고 있다. 페널티박스 안을 사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스리백의 진수를 보여준 칠레의 브라질과의 16강전 플레이를 되돌려보자. 칠레는 과감한 압박으로 브라질을 밀어붙였지만, 한시도 페널티박스 안을 비워두지 않았다. 스리백이 모두 이 지역을 철저히 지켰다. 브라질이 지속적으로 공격에 나섰지만 정작 골을 만들어내야 할 페널티박스 안에서는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과거 몸싸움을 위해 체격 조건이 좋은 수비수가 선호되던 것과 달리, 페널티박스 안을 효율적으로 지킬 수 있는 수비수가 인정을 받았다. 칠레의 센터백 게리 메델(카디프시티)은 체격조건이 1m72cm-74kg에 불과하다. 과거같으면 스리백의 한축을 담당할 수 없는 신체조건을 가졌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고 공간을 지키는 영리함으로 칠레의 수비를 이끌었다.
페널티박스에 안정감을 더하자 과감한 공격이 가능해졌다. 오히려 과거보다 공격숫자를 더욱 늘릴 수 있게 됐다. 칠레는 스리백을 제외한 7명이 수시로 공격에 가담하며 브라질을 밀어붙였다. 좌우 측면 공격은 풀백이 맡았으며, 산체스와 바르가스는 측면으로 벌리기 보다는 중앙으로 이동해 상대를 괴롭혔다. 아쉽게 8강 문턱에서 좌절됐지만, 스리백에 티키타카를 접목시킨 멕시코의 경기력 역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라윤과 아길라르라는 두 풀백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며 윙포워드가 없는 전술적 결함을 메울 수 있었다.
축구는 분명 진화하고 있다. 20년을 넘게 지배했던 포백의 시대 대신 더욱 세련된 스리백이 브라질월드컵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