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든 '의리논란' 어떻게 봐야하나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4-06-24 06:41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 대한민국과 알제리의 경기가 23일 (한국시간) 포르투 알레그레의 에스타디오 베이라리오 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의 박주영이 알제리 메스바와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브라질)=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06.23/

자, 당신이 월드컵대표팀 감독이라고 가정해보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알제리전, 박주영(아스널)과 김신욱(울산), 이근호(상주) 중 어떤 카드를 꺼내들 것인가.

박주영 반대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박주영을 대신할 공격수가 한국에 있냐"고. 대부분의 축구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박주영만한 원톱은 없다." 경험과 기술, 전술이해도와 필요할 때 한방 터뜨릴 수 있는 클러치 능력까지,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유럽에서 벤치를 달구고 있는 박주영보다 뛰어난 공격수가 없다. 대안은 없고, 비판만 있다. 소위 '의리'의 모순은 여기서 출발한다.

시작 전부터 홍명보호를 흔들었던 '의리'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러시아전 이후 주춤하던 목소리는 알제리전 대패 후 춤을 추고 있다. 알제리전의 대패,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근거없는 비난은 안된다. 박주영의 알제리전 선발출전은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다. 러시아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공격수는 수비수와 다르게 컨디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어제의 역적이 오늘의 영웅이 될 수 있다. 큰 경기에서 많은 골을 기록한 박주영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박주영 대신 나설 선수는 경험이 전무한 김신욱이었다. 김신욱은 좋은 선수지만 홍명보호의 플랜A는 아니었다. 박주영의 선발출전을 '의리'로 포장할 수 없는 이유다.

선수선발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8년 전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독일월드컵에 나선 호세 페케르만 감독은 하비에르 자네티, 월터 사무엘 등 최고의 선수들을 모두 제외하고 자신이 청소년 대표팀 감독시절부터 중용하던 선수들이 대거 발탁했다. 이를 두고 마라도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페케르만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면 국민들은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 그의 동상을 세운 후 키스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국민들은 그의 목을 치게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비록 8강에 머물렀지만, 아무도 그의 선택을 '의리'라 하지 않았다.

물론 홍 감독의 선택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으로 평가받은 오른쪽 윙백에서 이 용(울산)과 김창수(가시와 레이솔)를 고집한 부분이 그렇다. 대신 경험이 풍부한 차두리(FC서울)의 제외는 아쉽다. 차두리는 K-리그에서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측면에 포진한 이영표가 사실상 수비진의 리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두리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가졌다.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이명주(알 아인)를 뽑지 않은 것도 아쉽다. 중거리슛과 세밀한 패싱력을 가진 이명주가 있었더라면 다양한 공격루트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이명주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간주했다. 설령 그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판단했더라도 큰 물에서 뛰는 김보경(카디프시티) 구자철(마인츠) 대신 이명주를 발탁하는 모험을 걸 수 있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홍 감독의 스타일은 안정에 기반을 둔 보수에 가깝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편이다. 홍 감독은 "모든 비난은 내가 안고 간다"고 했다. 맞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의 몫이다. 엔트리 선발부터 알제리전 전술까지 모두 홍 감독의 결정이었고, 선택이었다. 이에 대한 결과론적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적을 노래할 수 있는 벨기에전이 남아 있는 지금, 무의미한 '의리' 논란은 너무나 안타깝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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