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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당신이 월드컵대표팀 감독이라고 가정해보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알제리전, 박주영(아스널)과 김신욱(울산), 이근호(상주) 중 어떤 카드를 꺼내들 것인가.
박주영 반대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박주영을 대신할 공격수가 한국에 있냐"고. 대부분의 축구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박주영만한 원톱은 없다." 경험과 기술, 전술이해도와 필요할 때 한방 터뜨릴 수 있는 클러치 능력까지,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유럽에서 벤치를 달구고 있는 박주영보다 뛰어난 공격수가 없다. 대안은 없고, 비판만 있다. 소위 '의리'의 모순은 여기서 출발한다.
선수선발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8년 전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독일월드컵에 나선 호세 페케르만 감독은 하비에르 자네티, 월터 사무엘 등 최고의 선수들을 모두 제외하고 자신이 청소년 대표팀 감독시절부터 중용하던 선수들이 대거 발탁했다. 이를 두고 마라도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페케르만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면 국민들은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 그의 동상을 세운 후 키스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국민들은 그의 목을 치게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비록 8강에 머물렀지만, 아무도 그의 선택을 '의리'라 하지 않았다.
물론 홍 감독의 선택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으로 평가받은 오른쪽 윙백에서 이 용(울산)과 김창수(가시와 레이솔)를 고집한 부분이 그렇다. 대신 경험이 풍부한 차두리(FC서울)의 제외는 아쉽다. 차두리는 K-리그에서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측면에 포진한 이영표가 사실상 수비진의 리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두리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가졌다.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이명주(알 아인)를 뽑지 않은 것도 아쉽다. 중거리슛과 세밀한 패싱력을 가진 이명주가 있었더라면 다양한 공격루트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이명주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간주했다. 설령 그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판단했더라도 큰 물에서 뛰는 김보경(카디프시티) 구자철(마인츠) 대신 이명주를 발탁하는 모험을 걸 수 있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홍 감독의 스타일은 안정에 기반을 둔 보수에 가깝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편이다. 홍 감독은 "모든 비난은 내가 안고 간다"고 했다. 맞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의 몫이다. 엔트리 선발부터 알제리전 전술까지 모두 홍 감독의 결정이었고, 선택이었다. 이에 대한 결과론적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적을 노래할 수 있는 벨기에전이 남아 있는 지금, 무의미한 '의리' 논란은 너무나 안타깝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