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들은 경기 후 뛰었던 장면을 복기할 수 있다. 하지만 생애 첫 월드컵 경기였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름 각급 대표팀에서 국제경험을 쌓았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두려웠고, 긴장했던 경기다." 유상철 전 대전 감독의 말이다.
월드컵은 최고의 무대다. 청소년월드컵, 올림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팬들과 언론의 관심, 경기 결과에 대한 책임감 등에 따른 중압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권(광저우 헝다)과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영건 코코린을 완벽히 봉쇄했다. 평가전에서 잔 실수를 범했던 김영권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만점 수비를 펼쳤다. 김영권은 "실수로 실점을 내준 게 아쉽다"면서도 "볼 소유를 잘하려 했는데 경기력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알제리전에서는 프리킥으로 골을 넣고 싶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홍정호도 부상으로 낙마했던 런던올림픽의 설움을 날리는 활약을 펼쳤다. 후반 체력이 떨어지며 다리 경련으로 교체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한국영(가시와 레이솔)도 빛났다. '뉴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에 걸맞게 중원에서 러시아의 공격을 완벽히 차단했다. "믿음으로 무장하고 나와 경기를 했다. 감독과 선수들 간 믿음이 컸고, 그라운드에서 잘 이뤄졌다"며 "전반전을 시작하면서 '내 유니폼이 모든 선수 중 가장 더러워져야 한다. 진흙범벅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이 빠르진 않지만, 상대 선수를 막으려 최선을 다했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정성룡(수원)과 윤석영(QPR)은 논란을 이겨냈다. 계속된 부진으로 축구팬들의 조롱을 받았던 정성룡은 본선에 들어서자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공중볼에서도 안정감을 보였고, 슈팅 방어도 문제가 없었다. 러시아가 날린 10개의 유효슈팅 중 9개를 막아냈다. 단 한번이 아쉬웠다. 후반 29분 케르자코프의 슈팅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골이었다. 정성룡은 "결과가 아쉽지만, 괜찮은 경기였다"며 "러시아전 한 경기로 만족하지 않겠다. 알제리전은 승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했다.'의리발탁'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윤석영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과감한 돌파로 공격의 활로를 뚫었고, 수비에서도 안정감을 보였다. 측면 수비에 대한 불안함을 확실히 날렸다.
'홍명보호의 영원한 캡틴' 구자철(마인츠)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고, '중원의 핵' 기성용은 94%의 패스성공률을 과시하며 공수 조율을 완벽히 해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지적된 홍명보호의 약점은 경험 부족이었다. 하지만 '홍명보의 아이들'은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16강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