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톱, 브라질서 대세가 될 수 있을까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4-06-10 07:22


사진출처=독일축구협회 홈페이지

페레이라 전 브라질 감독은 2003년 축구 코칭 강연회에서 "미래의 축구는 4-6-0 전술이 될 것이다"고 예견했다.

전문 스트라이커가 없는 제로톱은 페레이라 전 감독의 말대로 최근 가장 각광받는 전술이다. 4-6-0 전술의 탄생 배경부터 살펴보자. 2000년대 들어 압박축구가 주류를 이루며 미드필드 싸움이 더욱 치열해졌다. 4-4-2 대신 허리에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난 4-5-1 전형이 유행을 탔다. 너도 나도 4-5-1 카드를 꺼내들자 미드필드에서 팽팽한 균형이 이루어졌다. 그 탓에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고립되는 현상이 이어지며 자연스레 득점력이 감소하게 됐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나온 것이 바로 제로톱이다.

제로톱은 기본적으로 문전으로 진입하는 선수가 누구든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자세히 살펴보자. 수비수는 공격수의 움직임에 맞출 수 밖에 없다. 포워드가 미드필드 진영으로 내려가면 센터백은 자기의 마크맨을 잃게 된다. 2명의 센터백이 빈공간을 막아야 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때 센터백 중 한명이 미드필드까지 올라온다면, 그 공간에 다른 미드필더가 침투하며 공략할 수 있다. 이때 골문 앞으로 침투하는 선수가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미드필드 숫자를 늘려 상대와의 허리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침투로 상대 수비진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제로톱의 기본 골자다.

2005~2006시즌 스팔레티 감독이 이끈 AS로마가 국제무대에 제로톱을 알렸다. 스팔레티 감독은 만시니-페로타-타데이 등 문전 침투 능력이 좋은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공격형 미드필더' 토티를 최전방에 세웠다. 토티는 왼쪽, 오른쪽, 2선을 부지런히 오가며 2선 공격수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냈다. 이후 2007~2008시즌 맨유가 변형 제로톱으로 재미를 봤다. 퍼거슨 감독은 루니-테베스 두 섀도 스트라이커가 측면과 2선을 오가는 사이 측면에 포진한 호날두가 과감한 침투로 골을 넣게 하는 전술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유럽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석권했다. 제로톱의 완성은 역시 2008~2009시즌의 바르셀로나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오른쪽 측면에서 활약하던 메시를 중앙 공격수로 돌리는 제로톱 전술로 부임 첫해 트레블의 대업을 달성했다. 바르셀로나는 티키타카와 제로톱의 결합으로 역사상 최고의 팀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메시는 엄청난 득점력을 보이며 각종 골기록을 경신하며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클럽 무대와 달리 국가대표 레벨에서는 제로톱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충분한 스트라이커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메시라는 당대 최고의 제로톱 후보를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 조차 메시를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측면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게로와 이과인 같은 특급 공격수가 있기 때문이다. 유로2012에서 스페인이 제로톱을 꺼낸 것은 토레스의 부진이 이유였다. 기회를 마무리짓는데 특화된 스트라이커가 있다면 전술적으로 복잡한 제로톱을 꺼내들 이유가 없다. 파브레가스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에서 제로톱으로 출전해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였지만, 그의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다. 전문 스트라이커보다 마무리에서 아쉬움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델 보스케 감독이 부상으로 활약이 불투명했던 코스타를 막판 최종엔트리에 포함시킨 것을 보면 스페인은 이번 월드컵에서 제로톱 대신 원톱 카드를 꺼낼 확률이 높다. 물론 코스타를 비롯해 스트라이커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제로톱 카드를 꺼낼 것이다. 파브레가스를 활용한 제로톱은 최근 친선경기에서도 여전한 위력을 발휘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팀은 독일이다. 독일은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제로톱을 주 전술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최종엔트리에서 전문 포워드로 클로제 한명만을 포함시켰다. 클로제 역시 득점력보다는 미드필드진과의 연계플레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독일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원은 풍부하다 못해 넘쳐흐를 정도이다. 포돌스키와 외질, 뮐러 같은 기존 공격형 미드필더들에 더해 크로스, 괴체, 드락슬러 등 신예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즐비하다. 독일의 레전드 베켄바워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한 데 굳이 최전방에 전문 공격수를 배치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뢰브 감독은 친선경기를 통해 외질과 괴체를 사용한 제로톱을 시험하고 있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독일이 제로톱으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국가대표 무대에서도 제로톱이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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