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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장미에서 인동초' 홍정호 "월드컵 해볼만하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4-07 07:18


홍정호(오른쪽)가 판 바이텐과 헤딩싸움을 펼치고 있다. ⓒAFPBBNews = News1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는 화려한 장미였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언제나 중심이었다. K-리그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제주에 입단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A대표팀에서도 수비의 핵으로 자리잡았다.

그랬던 그가 길가에서 꽃이 되고 말았다. 2013년 8월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독일 진출에 성공했다. 중앙 수비수가 유럽 빅리그로 가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은 주로 측면 공격수나 측면 수비수들이 유럽으로 나갔다. 중앙 수비수는 개인 기량 뿐만 아니라 언어와 리더십 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중앙 수비수로 첫 해외 진출에 성공한 홍정호에겐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전이 아닌 벤치에 앉는 시간이 더 많았다. 화려했던 장미는 순식간에 길가의 잡초가 됐다.

그로부터 8개월. 홍정호는 변하고 있었다. 그냥 잡초가 아니었다. 남들이 알아봐주지 않고, 길가의 먼지를 뒤집어 썼다. 하지만 내공은 쌓여 갔다. 시련 끝에 꽃을 피웠다. 6일 새벽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SGL아레나에서 열린 '세계 최강' 바이에른 뮌헨과의 분데스리가 29라운드 홈경기에서였다. 홍정호는 선발 출전했다. 3월 2일 하노버와의 경기 이후 한달만의 선발 출전이었다. 75분을 뛰었다.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를 선보였다. 홍정호는 아우크스부르크의 1대0 승리에 힘을 보탰다. 경기 후 한뼘 더 성장한 홍정호를 만났다.

얼굴에는 최강을 이겼다는 기쁨이 번졌다. 환하게 웃으면서 나왔다. "선수들이 많이 준비했는데 운도 따랐다"면서 즐거워했다. 홍정호는 "어찌보면 더비 매치다. 홈에서는 꼭 이기겠다는 각오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뮌헨에서 기차로 40분 떨어져있다. 아우크스부르크 사람들은 뮌헨에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날 경기 후 아우크스부르크 사람들은 마치 리그 우승을 차지한 듯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승리를 만끽했다.

홍정호가 즐거워하는 것은 첫 선발 승리이기 때문이다. 홍정호는 "그동안 선발로 몇 차례 나왔다. 그 때마다 승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겼다. 그것도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했다. 평생 잊지 못할 경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승리와 더불어 소중한 경험도 쌓았다. 이날 바이에른 뮌헨은 마리오 만주키치와 클라우디오 피사로 등 쟁쟁한 공격수들을 투입했다. 게다가 홍정호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오른쪽을 크게 올리며 홍정호에게 부담을 가했다. 하지만 홍정호는 이들의 공세를 차분하게 막아냈다. 수비진을 리드하고 탁월한 위치선정으로 오프사이드 트랩에 빠뜨렸다. 때로는 거친 몸싸움도 피하지 않았다. "오늘도 나를 타깃으로 삼고 압박을 하더라"고 말한 홍정호는 "뒷공간을 파는 것과 크로스 때리는 것을 주시하면서 경기에 임했다. 오히려 편했다. 지면 당연한 것이고 이기면 대박이기 때문이었다. 즐기자는 마음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설명했다.
홍정호. 아우크스부르크(독일)=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비단 오늘 경기만이 아니다. 홍정호가 매 경기마다 세계적인 공격수들과 상대한다. 이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좋은 경험이 될 수 밖에 없다. 홍정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좋은 공격수들이 나온다. 월드컵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붙어보면 다들 해볼만 하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하니까 이기지 않았느냐. 월드컵에서도 간절함을 가지고 도전하면 해볼만 할 것이다"고 했다.

이어 K-리그와의 차이도 이야기했다. 홍정호는 "템포가 너무 빠르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실 수비는 크게 힘든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수비하다가 공격하고 다시 수비한다. 템포가 너무 빨라 한 순간도 눈에서 볼을 뗄 수 없다. 개인 기량도 좋아 수비하려고 함부로 덤빌수도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벤치 시절로 돌렸다. 홍정호가 크게 성장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 아마추어시절부터 벤치는 모르고 성장했다. 이 곳에 오니 벤치가 기다리고 있더라. 벤치선수로 경기에 대한 배고픔을 배웠다. 그리고 여유도 알게 됐다. 벤치에 있으니 경기 전체가 보이더라. 큰 자산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옆에 힘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지동원(23)이었다. 지난 겨울 지동원이 같은 팀으로 왔다. 쓸쓸했던 홍정호에게 큰 힘이 됐다. 둘은 차로 5분 거리에 산다. 가족들도 모두 친하다. 훈련 때도 늘 함께다. 쉴 때는 둘이 모여 캐치볼, 농구, 탁구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시내에 나가 밥을 먹기도 한다. 홍정호는 "외국에서 한국 선수가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마음이 너무 편하다.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지동원만이 아니다. 외국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들 모두가 동료이자 친구들이다. 홍정호는 "(구)자철이 형이나 (박)주호 형, (손)흥민이 같은 경우에도 자주 연락하고 오면 같이 밥을 먹는다"면서 "타국에서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홍정호는 4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목표를 물었다. "부상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2012년 홍정호는 무릎을 크게 다쳤다. 그 때문에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가지 못했다. 월드컵은 그럴 수 없었다. 홍정호는 "다치지 않고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마무리한 뒤 돌아가겠다. 꼭 월드컵에서 뛰고 싶다"고 다짐했다.
아우크스부르크(독일)=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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