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하늘숲길트레킹

스포츠조선

J리그가 K리그에 던진 조언, "시간이 필요해"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4-01-28 11:01



반포레 고후의 우미노 가즈유키 회장이 강단에 섰다. 극심한 재정난을 극복하고 12년 연속 흑자를 낸 경영 노하우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지난 23일 서울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경향신문 초청 한일 축구산업교류 포럼' 현장. J리그를 이끌어온 그들의 메시지는 K리그에 더없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12년 연속 흑자, 반포레 고후의 힘은 어디에

3년 연속 최하위 성적에 평균 관중은 고작 600명. 법인화 이후 4년 동안 쌓인 부채는 4억 엔을 훌쩍 넘었다. 2000년 12월, 현지 언론에서 점친 반포레 고후의 사망 선고는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우미노 가즈유키 회장이 뛰어들며 급속히 바뀐 이 구단엔 확고한 '생존 철학'이 있었다. "우리는 돈이 없어 좋은 선수를 영입하지 못한다. 모기업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적자를 내면 그대로 팀이 사라지기에 무조건 흑자 경영만을 추구한다."는 것. 항상 이기지는 못해도, 늘 팬들에게 사랑받는 팀을 만들겠다는 다짐이 구단 운영의 기초가 됐다.?

고후는 지역 공헌 사업에 발 벗고 나선다. 초등학교를 방문해 축구 교실을 열었고, 장애인 및 노인 요양 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 지역 경찰과 연계한 캠페인을 시도했고, 농촌 수확 시기에는 일손을 거들었다. 신인 선수도, 외국인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단은 "지역 주민들이 계셔서 우리가 축구를 할 수 있다."라고 교육하며 지역 밀착 마케팅에 불을 붙였다. "몇십만 엔, 몇백만 엔이 아니어도 좋다."라고 손을 내민 고후는 어떠한 도움도 마다치 않았다. 그리하여 유니폼 세탁도, 얼음 제공도 지역 사업체로부터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거대 기업 대신 '개미 스폰서'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긴 이들은 지역의 도움을 먹고 성장해 왔다.

효과는 확실했다. 선수들을 나르는 들것에도, 선수들이 입장하는 터널에도, 그리고 볼보이가 입은 조끼에도 스폰서가 붙었다. 어디 그뿐인가. 골대 뒤로 여러 줄의 광고판이 늘어섰음은 물론, 코칭스태프가 앉는 벤치에도, 경기장 육상 트랙에도 후원 업체명이 실렸다. 언론도 잘 활용했다. 선수단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며 관심을 끌었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지면에 스폰서 명단을 기재해 은근슬쩍 경쟁을 유도하기도 했다. 팀 성적이 늘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1, 2부리그의 승강을 거듭했음에도 팀의 재정은 오히려 불어났다. 지역의 힘으로 살아난 고후는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지역 공헌에 얼마나 협조적인가를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과연 K리그는 이에 대해 무지한가

반포레 고후만이 아니었다. 산프레체 히로시마, 시미즈 에스펄스, 마츠모토 야마가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이들의 발자취에 던지고 싶었던 질문 하나. '과연 이것이 K리그 관계자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롭고도 획기적인 이야기인가'. 모기업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지역과 밀착해 팀의 자생력을 길러야 함은 자명한 진리로 통해 왔다. 부산 김원동 사장이 '스킨십 마케팅'을 언급했듯 국내 프로축구판에도 '지역과 함께 한다'는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돼 있다. 높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활동이 그간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높은 발전을 이뤄내지 못한 데에는 의지의 여부와는 무관한 제약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K리그 어느 구단 관계자의 말에 답이 있었다. "이겨야 한다. 성적을 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역 기업으로부터 조그만 투자라도 받지 않겠는가."에는 '성적→기업의 투자→재정 확보'라는 순서가 깔려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승리에 쏠릴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갓 창단한 시도민구단이 어떻게 몇 년, 몇십 년을 이어온 기존 구단을 쉽사리 요리할 수 있겠는가. 구단의 생존이 경기의 승패에서만 판가름 나는 게 아님을 철저히 증명해 온 J리그의 생존법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 밀착→기업의 투자→재정 확보→성적'이라는 과정을 병행하지 않고서는 K리그의 생존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승리,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절실한 건 이기든 지든 팬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게끔 하는 작업이다.


이해 구조가 섞인 외부의 입김도 문제다. 성장의 씨앗이 '선수단-프런트-팬'의 조화로 뿌리를 내릴 만하면 이내 외풍이 불어닥친다. 시도민구단의 태생적 한계와도 맞물리는 부분, 제 3자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종종 일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사자는 그럴싸한 반박으로 포장하지만,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창단부터 지역 밀착에 의욕적으로 나선 어느 도민구단의 사례는 또 어떤가. 감독과 사장부터 나서 나비넥타이를 맨 채 일일 찻집 서빙에 나섰고, 사랑의 집짓기 현장에서는 헬맷을 쓰고 못을 두드렸다. 중증장애인 시설을 찾아 장애인과 대화를 나눴고, 다문화 가정 농촌일손 돕기도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 및 감독이 교체된 이후 이들의 지역 밀착 활동은 뚝 끊겨 버렸다. 3년을 투자한 팀 컬러는 금세 바랬다.


충분한 시간과 장기적 안목 없이는 불가능해

결국엔 '시간'과 '연속성'의 문제다. 지나친 승리 지상주의에서 벗어난 팀, 외풍에도 끄떡없는 팀을 만들어야 함에 이견을 제시하는 자가 있겠는가. 이를 위해 '지역 밀착'이라는 필수 코스를 거쳐야 함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이러한 생각을 실현할 만한 충분한 시간, 시행착오를 각오한 장기적인 안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역시 탁자 위에서 오가는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1~2년, 그것도 산발적으로 시도한 지역 밀착으로는 절대 팬의 마음을 살 수 없는 법. 행사에 참석한 J리그 관계자들의 말은 K리그의 폐부를 찔렀다.

시미즈 에스펄스의 야스히 하라 강화부장에게 물었다. 구단 인사 교체에 대한 J리그 내 풍토는 어떤가 싶었다. "팀마다 다르긴 하다. J리그 내에서도 사장단이 자주 바뀌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라고 답한 그는 "?그럼에도 강화부장을 포함한 기본적인 스탭의 체계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남아 구단이 이끌어온 철학을 계승해나간다."고 덧붙였다. 지어오던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방식은 아니었던 것. "기존의 체제와 새로운 인사의 조화를 통해 팀을 이끌어갈 장기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마츠모토 야마가의 오오츠키 히로시 사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성적에 대한 목표가 분명한 팀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몇 년 이내에 J1에 가겠다는 것보다 2주에 한 번 2만 명의 관중을 꽉 채우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다."라며 팀의 철학을 밝혔다. "성적을 내려면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역효과가 난다."며 "오히려 천천히 가는 게 좋다. 시간이 필요하다. 독일이 그랬듯이 우리도 그 모델을 단계별로 밟고 있다."던 그의 대답엔 K리그와 J리그의 근본적인 시각 차가 스며있었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